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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수우 시인 / 이승잠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30.

김수우 시인 / 이승잠

 

 

미음 몇 술 뜨고 진통제를 삼킨 엄마

금세 잠에 떨어진다

어둠을 밝은 데로 끌어내려는 듯

입을 벌린 채 잠이 들었다

 

벌어진 목구멍으로 매화가 피어났다 아, 아,

바람 한 점 없는 암병동 침상에서 홀로 한 꽃 떨어지고 한 꽃 터진다

 

가슴팍 두 개의 낡은 창고엔

여든 여섯 갈피의 봄이, 여든 여섯 굽이의 매화숲이 살고 있었는가

덜겅대는 문짝 찐득찐득한 그리움을 밀고

돌아오는 매화, 돌아가는 매화

사랫길 아득하다

 

조심조심 허물어지는 저 노동의 담장

먼지의 고집을 닮은 엄마의 창고는 전부가 사랑이었다

첫사랑을 오래 연습해온 모양

산그늘에 풀거미에 새벽달에게 혼자 젖물리던 날들

창고 속 그렁그렁한 눈물로 서성인다

 

헝겊주머니가 된 창고, 이승잠 속에서

하루하루 고요하다

환해라,

일곱 남매 악착같이 빨아댄 젖망울을

투정 많은 세상에 아직 물리고 싶은 걸까 창가에 매화 날린다

 

발톱 서너 개 시꺼멓게 죽어버린 발

빨간 꽃무늬 양말이 뜨겁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4월호 발표

 


 

김수우 시인

부산 출생,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길의길』, 『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 『젯밥과 화분』, 『몰락경전』과 사진에세이집 『하늘이 보이는 쪽창』, 『지붕 밑 푸른 바다』,『당신은 나의 기적입니다』 산문집 『씨앗을 지키는 새』, 『백년어』, 『유쾌한 달팽이』, 『참죽나무 서랍』, 『쿠바, 춤추는 악어』가 있음. 2005년 부산작가상 수상. 부산 원도심에서 <백년어서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