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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두자 시인 / 프릴 원피스
발설하지 못한 몸의 말들이 터질듯 입을 다물자, 허리가 사라지고 있었어 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변명도 끝나고 고백도 절대 없이 어디엔가 들어앉을 궁리만 하는 물컹한 살들, 숨을 곳이 없는 어두운 통로에서 목적을 잃어버렸어.
봉제선이 뜯어진 허리가 진실을 벗기네. 몸은 선하지. 공평하지도 않아. 몸은 왜 늘 몸부림일까. 들끊는 바람일까. 맨발로 거닐어도 저 무거워지는 방식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늪이야. 거울에 비춰지는 저 실체를 들어내고 발라내고 싶어.
뼈를 추려서 밖으로 내보내야 하나. 옷가지들을 펼쳐놓고 팔과 다리가 멋대로 통과하는 꿈을 꾸기도 하지. 자투리를 덧대 바느질을 하며 먹구름처럼 피어나는 권태와 불어 터진 솔기에 미묘하게 어긋나는 가슴까지 묻고 있어.
감추는 건 쉽고 감추는 걸 들키는 건 더더욱 쉬워서 초대받지 않은 시간에만 당도하고 싶어 하지만 불어나는 애증과 날마다 헐거워지는 입속의 말들은 서로 반비례하고 있어서
오늘, 나는 저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을 수 없네.
계간 『포지션』 2017년 겨울호 발표
하두자 시인 / 등뼈
가려든 길이 소란스러울 때 이목구비가 반듯했던 당신을 찾아 간다.
뒤엉킨 걸음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상징도 은유도 없는 당신을 향해 단 한 번의 표정도 바꾸지 않고 걸어간다.
풍파가 휘돌아 간 자리 당신이 여울져 있다.
굽은 등뼈의 속으로 들어가 물컹거리는 통로를 지나 심장 위쪽으로 튀어 나온 목뼈를 어루만지면서
그렇다고 당신이 직선만은 고집한 것도 아닌데
숨을 들이마시면 뼈가 부푼다. 부푼 뼈 등성이를 넘어가는 어제 같기도 하고 오늘 같기도 한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울고 있는 어깨들의 울음.
수직을 버리고 수평이 되는 바닥을 일으키지 못한 둥근 잠속 그곳엔 차마 내뱉지 못한 우여곡절이 있었지.
바깥에 놓인 사나운 절벽이나 벼랑 끝에 서있는 망막함이나 머뭇거림이 당신을 휘게 했을까.
머물던 자리 다 내어주고 등 뒤가 이제 춥다고 하네.
난 그만 아득해진다.
계간 『포지션』 2017년 겨울호 발표
하두자 시인 / 은밀
한 문장을 베고 잠이 들었다.
한 며칠을 더 기다리다가 아니 더 늦을 지도 모르는 너를 기다리다가 멀리 가버린 것이 이제 만들어지는 것일까.
새로운 몽상을 꿈꾸지 않는 조건으로 태어났다. 난생 처음 당신을 향하지 않게 된 문장.
시들어가는 꽃들에게 물을 듬뿍 주지 않아도 침대의 무늬가 하나도 바뀌지 않아도 미안해하지도 않아도 되는 문장
당신의 문장 어디쯤 복선을 숨겨 놓았는지 지금까지 난 알 수 없다. 고백이듯 침묵이듯 뒤척이는 밤은 진창에 가까워
시월로 가는 길은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해 으스러지게 붉다.
계간 『열린시학』 2018년 봄호 발표
하두자 시인 / 유고 시집을 읽는 방법
꼬냑 한 잔 홀짝이며 시집 하나를 들추고 있네. 시집은 장소와 분위기 따라서 멀쩡하다가도 잔뜩 뒤틀려서 삐딱도 하다가도 마지막 작품을 읽을 때는 먹먹해 지고 마네.
다시 한번 접힌 페이지를 열고 그 갈피 안으로 들어가 보네. 결핍으로 만들어진 이면지의 문장들은 바깥을 부르고 있어서 더듬거리던 감수성을 마무리 하지 못한 채 생략되고 있네.
눈 밝은 자만이 휘청이는 자학을 읽고 시마가 홀로 견뎌낸 오만을 감당할 수 있네.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편히 잠들 수 없어서 표류하는 밤. 당신이 끌고 온 삶은 슬퍼서 아리고 아려서 슬픈 불덩이 같은 애증의 환절기를 부려놓은 삽화들이네.
만약 필사를 한다면 아니 필사적으로 행간을 견딘다면 수런거리는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도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시인이 건네는 손은 잃어버린 문장이기도 무거운 손이기도 해서 층층 포개지는 어둠이 시집목록에 깔려있네. 얼룩무늬 맨발처럼, 혼자 먹는 쓸쓸한 저녁처럼 어둠 위를 나도 홀로 걸었네, 페이지마다 부서진 울음과 광기와 처연이 낭자했네.
시시하고 시시한 방에서 자꾸 어딘가로 데리고 향하려는 문장 하나 꼬냑 한 잔에 넣어서 또 다시 마시려고 하네. 쏟아질까 엎어질까 한 입에 삼키려고 하네.
계간 『열린시학』 2018년 봄호 발표
하두자 시인 / 공중으로 뜬 당신의 안부는 궁금하지 않아
몇 분, 몇 초 후 그곳에 도착할 것인지 아닌지 출발과 착지가 반복되는 네트에서 날아가 떨어뜨려야 하는 당신의 표적을 난 알 수 없어
자꾸만 어딘가로 떠나려고 하는 식어빠진 취향을 내일 또 달구어 보겠다는 나에겐 다른 방향과 태도만 있어
날아오르려고 하는 허공속의 말을 향해 스매싱을 날리듯 단호하게 겨냥을 하지 셔틀 쿡이 찢어져 주저앉기를 바라며
그러니 표적은 상징이야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당신의 반경 안으로 후렴구를 던져놓지 못하도록 무관심을 가로 질러 더 빨리 날아가도록
당신은 매번 되돌아오는 순간을 기다렸어 힘껏 받아치는 내 손목을 비웃기라도 하듯
황망한 당신의 눈빛은 얼핏얼핏 금을 밟고 밷어 내던 저주 의미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내 마지막 자만
그곳에선 다시는 안볼 것처럼 일부러 패배자가 되어 한걸음, 한걸음씩 뒤로 물러서다가 하얀 손수건을 힘껏 던지고 돌아섰지 게임 아웃, 이제 정말 복식은 지긋지긋해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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