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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휴 시인 / 엄마, 없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31.

김휴 시인 / 엄마, 없다

 

 

항상 빈 그릇이었던 바람의 시기는 눈을 맞출 이유가 없었고 날마다 검은 고양이로 밤을 소모해야 하는 즐거운 입장차이는 있었다.

 

가슴에 실금이 가기 시작한 엄마는 안에서부터 뜨거워져야 하는 소금의 이유가 있었지만 어떤 말로도 꽃 피울 사연은 설득하지 못했다. 눈은 더 이상 미래를 엿보지 않았고 불편한 포옹에서의 물구나무서기는 정직한 엄마에게 효과적이었다.

 

심하게 기어들어간 복부에서 일기를 쓰다가 첫 엄마를 지워버렸고 아픈 기억을 갖고 싶다는 구름의 고백에서 두 번째 엄마를 팔아먹었다. 목구멍은 문밖까지 사연을 내다놓았지만 몰래 엄마를 찾아 다녔던 입은 거미줄이 가득했다.

 

슬그머니 이루어지는 이별은 죽은 꽃으로 자신을 후려치는 방식, 아무도 손을 흔들어 주지 않았고 서로의 비밀을 감싸주는 일도 없었으므로 세 번째 어머니는 가출을 했다.

 

징후가 없어서 난해했지만 한 번도 개화를 떠올린 적 없는 엄마가 순식간에 죽는 이유를 모르겠다. 바람의 일부가 심정이 되기까지는 데미안을 수천 번도 더 읽어야 하는 방식이고 눈의 뒤편에서 죽어가는 편지는 구름이 입김을 모으다가 벌레가 되어버린 순간을 울먹이고 있었다.

 

푸른 애벌레를 따라가는 가출은 제 몸을 말아서 구어 먹어야 끝나는 모독 같은 것, 당연히 용서를 위한 기도는 하지 않았고 세찬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엄마의 누런 잎은 꿈꾸는 중이었다. 검은 안경에 빠진 그 무렵에도 먼지가 쌓이도록 내버려두어야 할 식구들이 늘어났다. 지독한 체벌처럼 따라붙는 엄마는 기체상태로 아무나 사랑하는 배역이었지만 내 징후는 더 냉소적이어서 더 이상 엄마를 키우지 않겠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4월호 발표

 


 

김휴 시인

2006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물을 연습 중이다』가 있음.  2010년 아르코 창작지원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