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서빈 시인 / 바람 공법
세상에서 머리카락을 셀 수 있는 존재는 바람뿐입니다. 8만 4천 모공을 넘나드는 바람 닿는 곳마다 시원한 숲이 있습니다.
합법적 편 가르기를 할 수 있고 사람의 질서와 진열을 흐트려 놓을 수 있는 권한도 오직 바람뿐입니다.
꽃잎 떨어뜨리며 놀다 산사의 종소릴 흔들고 목어의 마른 천(川)을 공중에 흐르게 하고 푸른 가시로 따끔따끔 찔레덤불에 빨간 사혈침을 놓고 공원의자에 앉은 책장을 넘기고 매미허물도 슬쩍 입어보는 바람.
맨발로 뛰는 저 바람, 빈 집 대문을 덜컹 덜컹 흔들고 골목을 둘둘 감고 비닐봉지들의 뼈가 되는
번민의 가시관을 쓴 별빛, 이올리아의 하프*같은 목소리로 어둠을 건너오는, 미세한 촉수로 솜털로 세상을 공명통처럼 부풀려 놓기도 하고 불량스런 객기로 비틀거리게도 하고 어떤 기호로도 표시할 수 없는 갖가지 모습으로 울며불며 우주를 떠도는 바람의 공법.
*그리스 신화, 바람의 신 이올러스의 악기
웹진 『시인광장』 2016년 3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지혜 시인 / 센서 외 1편 (0) | 2019.05.31 |
|---|---|
| 나태주 시인 / 대숲 아래서 (0) | 2019.05.31 |
| 배정숙 시인 / 호더스증후군 (0) | 2019.05.31 |
| 김휴 시인 / 엄마, 없다 (0) | 2019.05.31 |
| 권행은 시인 / 목련꽃 지다 외 1편 (0) | 2019.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