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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우기 시인 / 국수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3.

심우기 시인 / 국수나무

 

 

안으로 단단히 반죽된 몸통. 제 껍질을 국숫발처럼 내주듯 거리에 하얀 국수나무꽃이 핀다. 시원한 멸치 국물 냄새 다 끓어 넘친다. 건져둔 멸치 비늘이 보도블록에 반짝인다.

 

치과에 모시고 갔던 한 남자의 엉성한 이가 생각나 커다란 눈물이 냄비그릇에 빠진다. 퍼져 녹아든 눈물로 천천히 간을 맞춘다. 속 시원하게 하는 뜨거움이 슬픔이 내려가는 듯 착각에 빠뜨린다. 휘젓는 젓가락질에도 빠져 나가는 눈물, 멸치의 냄새가 났다. 국수의 끝이 다 보인다.

 

양손 들어 올린 흰 대접에 검은 얼룩이 피어난다. 때 낀 열 개의 손톱, 짧은 손가락이 밉다. 다 건져먹은 슬픔에도 서러움이 남는지 뜨거운 국수 한 그릇이라도 나누지 못한 마지막 깨끗이 비운 그릇이 환한, 새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떠난 꽃 핀 길을 혼자 걸으며 내내 울었다. 나의 뿌리와 바다, 신이 된 한 남자를 생각하며

 

헛헛한 공복, 시장기를 느끼는 더러운 배반감이 뱃속에서 꿈틀거린다. 모든 것들이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밤. 살아야만 한다는 의문스런 당위가 퍼진 국숫발 같은 나뭇가지로 더 길게 늘어져 뚝뚝 끊어진다.

 

끄는 걸음에 바짓단이 쓸려 시커멓게 물들도록 바닥의 찌꺼기 눌어붙은 슬픔이 풀어지지 않는다. 나는 바닥에 붙어 바닥이 되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1월호 발표

 


 

심우기 시인

2011년 《시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검은 꽃을 보는 열세가지 방법』이 있음. 가천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