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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시인 / 폭설
그때 메말랐던 내 눈을 당신 눈빛으로 적셔 주었지 그랬었지. 내 불꺼진 손바닥에 끼워준 털장갑, 기쁘고 슬픈 표정까지 모두 당신 따스한 눈빛으로 만들어졌지
눈보라가 야수처럼 울부짖는 저녁 거리는 눈으로 차 있고 당신 더운 숨소리, 그 온기 가득한 손길도 얼어붙은 십이월 마른가지에 걸린 앙상한 계절 저쪽에서 당신 얼굴을 보았어 수은등 불빛도 얼어붙은 길 위로 어둠이 따라오는 소리 내 심장이 물보라 되어 떨어져 내릴 듯 세상 천개의 추위를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당신의 가슴 한 슬픔을 무너뜨리는 깊은 바람소리 하, 저 눈보라 불꽃보다 선명한 입술, 부드러운 눈빛 모두가 당신 심장마저도 얼어 희뿌연 눈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해도 서로 뜨겁게 언 손 감싼 물방울 된다면 폭설처럼 늙어가는 길목마다 하얀 꽃송이 피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거야
얼어붙은 거리 지나 안개꽃 닮은 당신 천개의 눈빛으로 내 심장 덮을거야
계간 『시와 문화』 2015년 겨울호 발표
김지희 시인 / 수전 손택
시인은 영혼의 고향에서 추방되어도 울지 않는다 파도 위 절벽들이 출렁인다 선율을 팽팽하게 견디고 있는 피아노처럼 침묵을 단호하게 간직하고 있는 입술…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 수사가 난무하는 세상을 응시하고 있다 피멍을 은폐하는 화려한 조명 헝클어진 가슴을 감추는 울긋불긋한 스튜디오를 치우고 있는 그대로 보라고 말한다 치장하지 않아도 그녀 심장은 타오르는 불꽃이다 내가 가면 쓴 나를 면도날처럼 상처를 입힌 불구의 시간 수전 손택을 따가운 햇살 같은 상처를 아름다움이라 쓰는 낯선 여자가 사는 시의 캄캄한 방에 가두었다 저음으로 말하는 그녀의 선율 굳은 살 투성이의 언어는 절정을 다해 자신(神) 속에- 감옥에… 거리에 짓밟힌 안개꽃 한 다발을 적신다 고통도 또 하나의 고향이란 반음이 흐르자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진부하다고 한다 나는 다른 언어를 생각해 본다 그녀를 위하여 우울한 저녁의 언어를 바꾸어 보리라 한순간의 셔터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영혼을 인화하고 있는 그녀 수백 수천의 불빛이 심장에서 터져 나온
*수전 손택(1933년 1월 16일 ~ 2004년 12월 28일) : 미국 소설가이자 수필가, 예술평론가, 극작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사회운동가.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를 통해 문화계의 중심에 섰다. 인권과 사회문제에도 거침없는 비판과 투쟁으로 맞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2003년 독일출판협회는 제5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손택에게 평화상을 시상했다.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것이 손택에게 평화상을 시상한 이유였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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