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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바다 시인 / 너를 속이지 않기 위해 나를 속이다
진주와 수정으로 장식된 이 의자에는 인간을 수천 번 까무러치게 하다 죽일 전류가 흐른다 하늘과 땅은 처음의 어둠과 혼돈으로 돌아간다 나를 위해 의자는 네가 만들었다 날카로운 금속 발톱이 빼곡히 박힌 등받이 추락의 공포를 충분히 맛보게 할 높이의 네 다리 엉덩이 살을 단숨에 찢어버릴 얼어붙은 얼굴 감수성이 풍부하고 논리적인 네가 만들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어떤 조치도 없는 출생 이후 주욱 비가 내렸고 날이 샐 무렵 바위에서 팔꿈치를 떼면 피와 고름이 묻어나왔다 달아나려 애쓰는 발꿈치는 계속 닳아가고 조금만 있으면 잠들 수 있고 꿈꿀 수 있는데 떠나지 않은 나머지는 화석이 될 것이다 코와 코를 맞대고 귀신은 붉은 입술을 움직여 웃는다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 지 생각해 봐 누군가 먼저 사라져야 끝나는 공포 말고 아직 남아있는 무릎을 만진다 모래시계가 멎는 동안 무릎은 한없이 멀고 낯선 행성의 내부 놀란 원숭이 마냥 나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너를 속이지 않기 위해 나를 속였을 뿐이야 우리의 시간이 다르게 침묵한다 서로에게 동의할 수 없는 말의 장지를 고르고 있다 랍비로 태어나 랍비로 죽을 것처럼 멋대로 지껄인 한 순간을 용서받으려면 얄팍하게 살아야했다 흰 장갑을 끼고 이상 없는 복부와 머리를 괜스레 열고 닫으며 까마귀떼 소리가 이렇게 편한 줄 몰랐다는 무릎을 두드리며 우리의 의자 앞에서 아직 행복할 수 있다
시집 『싱글』(실천문학, 2017) 중에서
김바다 시인 / 귀의 겨울
절름발이 사과를 귀로 베어 먹습니다 사과 아닌 사과를 귀 아닌 귀가 견디지 못해 붉게 녹슨 귀로 움푹 속살을 파내어 허기진 달팽이를 먹입니다 노란 사과 한 점이 달팽이의 식도를 따라 위와 항문을 거쳐 나오는 과정이 우리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얼굴에는 출구가 없습니다 물로 그린 문은 민달팽이의 항로처럼 금세 증발하지요 몸의 지도가 허물어집니다 태양신은 물 알갱이로 가득 찬 제물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풀잎의 끝에서 떨며 우리는 절름발이 사과를 귀로 베어 먹습니다 달팽이가 천천히 떠나간 귀로 바람은 노래를 부릅니다 둥근 상에 마주 앉아 우리는 빈 찻잔을 놓고 끝이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잔에 스민 대추와 감초 냄새를 귀로 씹으며 검은 가구 하나만으로 장식된 야간열차를 타고 몽마르트 언덕으로 갔지요 캔버스와 붓도 없이 서서 사람들아 나는 무엇입니까 작은 우리에 살고 있으니 새입니다 온 몸이 귀로 된 기형의 새이군요 물소리로 귀를 채우고 짤랑짤랑 동전 소리를 내는 멸종 위기의 그래서, 우리에 갇혀 보호받는 운명의 새 차는 달작지근하고 따뜻해 우리의 귀는 자귀나무 꽃처럼 벙글어지고 귓불은 붉어집니다 귓불을 만지작거리자 민달팽이가 잡힙니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내려다본 대지는 아득합니다 우리는 흩날리는 빗속 달팽이를 붙들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중입니다 문득 귀는 겨울이고 삼월토끼의 파티장을 횡단하고 있습니다
시집 『싱글』(실천문학, 201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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