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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경임 시인 / 송이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4.

이경임 시인 / 송이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나의 고양이 송이는

    높은 곳에 오르기를 즐기지만

    새들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송이의 감수성은 낭비 없는 미니멀리즘

    흙탕물처럼 흘러넘치거나

    갈라진 땅바닥처럼 메말라 있지도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져도

    집요한 탐구심을 포기하지 않고

    송이는 응시하거나 기다릴 뿐

    호기심 때문에 산만하게 방황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졸거나 침묵하며

    천천히 조용히 움직이며 보내지만

    마음만 먹으면

    송이는 번개와 우뢰처럼

    순식간에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

     

    가끔 멍청하고 게을러 보이기도 하지만

    우주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송이는 매사에 초연해서

    자주 울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송이는 요가의 달인처럼

    유연한 자세로 제 몸 닦는 것을 좋아하고

    쉽게 상처받거나 외로움을 타지도 않는다.

     

    주인인 나한테도

    당당하게 주도권을 갖고 싶어하고

    하고 싶은 만큼만 애정표현을 한다.

     

    송이 같은 시를 쓸 수 있을까.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1월호 발표

 


 

이경임 시인

1963년 서울에서 출생. 서강대 영문과와 전남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97년《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부드러운 감옥>이 입선되어 시단에 데뷔. 시집으로 『부드러운 감옥』(문학과지성사, 1998)과 『겨울 숲으로 몇  발자국 더』(문학과지성사, 2011)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