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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철 시인 / 마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3.

김명철 시인 / 마비

 

 

  내가 나를 베고 잤는지

  누가 내 팔을 베고 잤는지

  몇 주일 전부터 오른쪽 손과 팔이 자꾸 저리다

 

  네가 나에게로 오고부터

  가슴에 구멍이 난 채 초점 없는 눈빛으로

  돌멩이나 발로 차며 나에게로 오고부터

  마음에는 자주 침을 발라왔지만

 

  내 목이 거북이 목이라

  목뼈가 신경을 압박하기도 하겠지만

  손톱에 멍이 들고 뒤꿈치만 갈라지는

  구 개월 노동의 뒤끝이기는 하지만

  오래된 마음의 병이 온몸으로 퍼지고 있나 보다

  발가락 끝도 둔해지는 것 같다

 

  너로 인해 과욕처럼

  절반의 사람들이 나에게로 오고부터

  내 마음이 내 것이 아니었듯이

  이제는 내 살도 내 살이 아닌 것 같다

 

  어디에 바늘을 꽂아야 하나

 

시집 『바람의 기원』(실천문학, 2015) 중에서

 

 


 

 

김명철 시인 / 증폭

 

 

사월이었다

달빛이 요란한 밤이었다

들판의 고요가 비의(秘義)처럼 흐르고 있었다

앞서 지나간 누군가의 발자국 속에

별이 떨어져 있었다 어린 까치독사의 눈빛 같았다

 

발바닥이 갈라졌다 처음에는 그랬다 연탄보일러나 돌려막기 카드빚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담쟁이가 말라 죽었고 머릿속에서 모래가 쓸려 다녔다 유산(流産)이나 하나둘 떠나가는 것들도 일상이 되고 있었다 친구의 배신은 전조 없이 일어나는 한 마리 새의 로드 킬 같은 것에 불과했다 높은 뜻들도 다, 그러려니 했다

 

하늘에서 툭,

눈도,

귀도,

코도 없는,

붉은 심장만 있는 피투성이 사랑이,

떨어졌다.

 

파랗게 눈을 뜨며 솟아오르는 것들과 파랗게 몸이 식어 땅으로 꺼져드는 것들 사이에서 뼛속과 생각이 텅. 텅. 비는 밤이었다

 

몰락의 밤

 

초심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밤이었다

앞서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달빛 속으로 침몰되는 밤이었다

 

시집 『바람의 기원』(실천문학, 2015) 중에서

 

 


 

김명철 시인

충북 옥천에서 출생. 서울대 독문과와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짧게, 카운터펀치』(창비, 2010),  『바람의 기원』(실천문학, 2015)이 있음. 2007년과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현재 『시인광장』 편집위원이며 〈사월〉과 〈다시〉 동인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