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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영배 시인 / 사물의 방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5.

신영배 시인 / 사물의 방

 

 

여행 가방은 보이지 않고, 소리 나지 않고, 방향이 없고, 하지만 떠날 수 있다. 낡았고, 물에 젖어 있고, 무겁고, 하지만 날 수 있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녀는 물의자에 앉았다. 물의자에 앉아 방으로부터 달리는 그의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기울어졌다 물의자도 기울어졌다. 하지만 부드러웠다.

 

물안경은 반짝이고, 가볍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눈물방울들을 밀며 공중을 돌아다닌다. 혼자라는 식물이 머리 위에서 자랄 때 그곳에 물방울을 떨어뜨린다.

 

침대와 개, 침대와 고양이

침대는 개처럼 소란스럽기도 하고, 고양이처럼 고요하기도 하다.

 

탁자는 눈에 보이지 않고, 딱딱하고, 하지만 계속 악기 소리가 났다.

 

찻잔은 닿을 수 없고, 기울일 수 없고, 하지만 향기롭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1월호 발표

 


 

신영배 시인

2001년 계간 《포에지》에 〈마른 피〉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기억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물속의 피아노』,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