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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진돈 시인 / 시간의 그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4.

김진돈 시인 / 시간의 그물

 

 

사면의 창에 꽉 차 오르는 적막이다

 

뼈가 에이듯 추운 밤, 스페인 게릴라의 위력은 대단했다지 나폴레옹군대에 저항했던 당시,

절망스런 그림자의 깃발들, 물컹거리는 시간 같았던

세계는 돌아섰다

 

발자국 크기의 바람이 발코니에 걸릴 때

그녀를 멈추고

자주 들었던 음악의 기억 속에 무례한 저녁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몇 걸음 더 걷다보면 인정하지 못할 입술이 있고

그늘을 만지면 돌이킬 수 없는 오솔길에 걸렸던 끝없는 울음소리

 

쓸쓸한 귀들을 한 모금씩 뱉어낸다

 

Acete*는 이베리아반도의 상처, 독특한 방언이 깊은 음색으로 접속이 되면, 나는 전류처럼

무한증폭으로 개폐되고

너를 떠올린다

 

치명적인 눈빛과 깊게 패인 과거의 언어들이 시간의 그물에 걸린 것들

모두가 같지 않았다지 하나씩 하나씩 느리게 심호흡으로 풀려나간다

 

대서양과 지중해 사이의 해안도시 리바데오, 썰물 때만 바다에서 볼 수 있는 대성당 바다는

유폐된 상처들

아물지 못해 두텁고 우둘투둘한

 

시간의 그물 속을 빠져 나갔지 비어 있는 틈으로

침묵의 이빨에 물린 수많은 몸들

헝클어진 밤들이 창문을 열고 있다

 

*이베리아반도의 전통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그룹. 포르투칼의 전통음악인 파두음률이 나타나기에 스페인 포크그룹이면서 이베리아반도의 전통이 음악에서 느껴진다. 스페인과 포르투칼 특유의 음악냄새가 풍기는데 한때, 이슬람의 지배를 받아 유럽 국가들과 달리 아랍음악이 섞인 음악색이 또 다른 매력이다.

 

계간 『서정시학』 2016년 겨울호 발표

 

 


 

 

김진돈 시인 / 사랑이면

 

 

기억이 두 개의 시간에 걸려 있다

 

한 그림자가 문 밖을 건너면 눈동자가 찾아온다 새로 생긴 달빛이 그림자 모서리를 바라본다 발길 끊어진 다리에 남아있는 바람들 눈썹의 두께도 얇아지고 희석될 수 있는 겨울도 있는 것이다

 

수없이 이별한 갈랫길과 눈짓들 이면에 묶인 생각들이 흔들린다

 

기억은 혼자다 몸의 변두리는 바닥인 것이다

 

조용히 부르면 손가락과 손가락 틈으로 흘러내리는 지난 모래밭의 발자국들 흉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제 몸을 쓰다듬던 혀가 닳아가고 있는 것이다

 

계간 『문예바다』 2016년 봄호 발표

 

 


 

김진돈 시인

전북 순창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및 대학원 졸업(한의학박사). 2011년《열린시학》과 《시와세계》 상반기에 등단. 시집으로 『그 섬을 만나다』(2012년, 시와세계), 『아홉 개의 계단』(2016년, 작가세계)가 있음. 『시담』 편집위원 역임. 현재, 운제당한의원장, 경희대 한의대 외래교수, 『포에트리 슬램』 편집위원, 송파문인협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