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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영 시인 / 가자지구
뼈가 뼈 속으로 점점 가라안고 있다. 시간도 까맣고 나무도 까맣고 지나는 바람도 까맣다. 핏줄 속으로 섬뜩 기어들어온 ‘리도카인’이 나를 푹 절여놓고 톱질 소리 ... 눈발처럼 사뿐 사뿐 날려 온다.
항생제며 수액이며 근육 이완제며 무통주사, 담쟁이넝쿨처럼 감고 올라온 내 몸은 한그루 나무.
삶의 등에 깔려 허리가 부러진 놈 다리가 잘린 놈 터진 머리를 하늘 붕대로 싸매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 얼음길을 걸어온 검푸른 눈빛이 서로를 기대고 누워있다. 이 또한 ‘가자지구’ 아닌가.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 기대볼까. 하늘 냄새를 들여 마시니 하늘물이 든다. 라일락이 겨울 뱃속에서 불 밝히고 봄을 길어 올리고 눈길을 걸어온 자스민이 살포시 열어놓은 가슴이 까맣다.
그늘이 빛에게 입을 열었다간 날려버릴 여기는 경기장 탱글탱글 목에 올라온 말을 납작 접어 삼키고 새우가 고래 재채기할 때 튀어나왔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명마라는 명예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서 몸을 다져왔지만 이제는 자리를 내줘야하는 ‘가자지구’ 아닌 곳이 어디인가.
‘외로운 양치기’ 촉촉한 음률에 마른 가슴을 적셔 볼까. ‘이사도라’ 에 빠져서 너울너울 춤이라도 추어볼까. 난지도에 살다 보면 어느새 난지도가 되는 한줄기 바람. 하늘 아래 누구나 오늘을 지고 가는 한줄기 바람.
우리가 해아래 안 왔어도 기다리는 이 없는 것을 하느님도 기다리지 않는 것을, 누가 우리들을 흙에다 심어 놓았는가.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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