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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전순영 시인 / 가자지구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7.

전순영 시인 / 가자지구

 

 

    뼈가 뼈 속으로 점점 가라안고 있다.

    시간도 까맣고 나무도 까맣고 지나는 바람도 까맣다.

    핏줄 속으로 섬뜩 기어들어온 ‘리도카인’이 나를 푹 절여놓고

    톱질 소리 ...

    눈발처럼 사뿐 사뿐 날려 온다.

     

    항생제며 수액이며 근육 이완제며 무통주사, 담쟁이넝쿨처럼 감고

    올라온 내 몸은 한그루 나무.

     

    삶의 등에 깔려 허리가 부러진 놈 다리가 잘린 놈 터진 머리를

    하늘 붕대로 싸매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

    얼음길을 걸어온 검푸른 눈빛이 서로를 기대고 누워있다.

    이 또한 ‘가자지구’ 아닌가.

     

    ‘베르디의 운명’의 힘에 기대볼까.

    하늘 냄새를 들여 마시니 하늘물이 든다.

    라일락이 겨울 뱃속에서 불 밝히고 봄을 길어 올리고

    눈길을 걸어온 자스민이 살포시 열어놓은 가슴이 까맣다.

     

    그늘이 빛에게 입을 열었다간 날려버릴 여기는 경기장

    탱글탱글 목에 올라온 말을 납작 접어 삼키고

    새우가 고래 재채기할 때 튀어나왔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명마라는 명예를 놓치지 않으려고 서서 몸을 다져왔지만 이제는

    자리를 내줘야하는

    ‘가자지구’ 아닌 곳이 어디인가.

     

    ‘외로운 양치기’ 촉촉한 음률에 마른 가슴을 적셔 볼까.

    ‘이사도라’ 에 빠져서 너울너울 춤이라도 추어볼까.

    난지도에 살다 보면 어느새 난지도가 되는 한줄기 바람.

    하늘 아래 누구나 오늘을 지고 가는 한줄기 바람.

     

    우리가 해아래 안 왔어도 기다리는 이 없는 것을

    하느님도 기다리지 않는 것을, 누가 우리들을 흙에다 심어 놓았는가.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1월호 발표

 


 

전순영 시인

1999년 《현대시학》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목이 마른 나의 샘물에게』와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숨』 등과 에세이집 『너에게 물들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