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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선향 시인 / 여독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6.

김선향 시인 / 여독

 

 

여독을 풀어달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낙타는 탈진했다. 입에서 단내가 풍겼던가. 여자는 낙타를 품에 안았다. 낙타의 몸은 잔뜩 부어 있었다. 서역으로부터 온 게 틀림없다고 여자는 우기고 싶다. 여자가 낙타를 기울이자 한 줌의 모래들이 차르륵 쏟아져 내린다. 모래가 서걱이는 낙타 눈알을 여자는 혀로 핥기 시작한다. 여자는 낙타 사타구니에 눌러붙어 있는 해당화를 맛본다, 비린내. 그래서 여자는 낙타가 바다로부터 왔다는 새로운 상상을 시작한다. 낙타는 지저분했고 여자는 그게 더 좋았다. 여자가 구멍을 오래 핥아주었더니 낙타의 그것이 수세미외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낙타와도 관계를 할 수 있다니. 여자는 조급해졌다. 낙타의 땀방울이 여자의 눈알 속으로 떨어져 여자는 낮게 신음한다. 오르가슴에 다다른 여자의 얼굴은 마애불의 미소와 흡사하다. 여자는 기진맥진한 낙타의 배 위에 걸터앉아 목덜미를 조른다. 여자는 죽은 낙타를 먹기 시작한다. 말향고래처럼 비대해서 먹어치우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제서야 여자는 낙타의 말, 침묵을 음미한다. 기묘하게 쓸쓸하고 적막한 시간들이 흐르자 여자의 배는 부풀어 오른다. 머지않아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낙타인 바람의 사생아가 태어날 것이다.

 

시집  『여자의 정면』(실천문학, 2016) 중에서

 

 


 

 

김선향 시인 / 나를 버리다

 

 

  정처 없이 떠돌다가

  소나무 숲 바위 위에 눕습니다

 

  만월이 정수리를 비추는 시간

 

  남은 거라곤 몸뚱이 뿐입니다

  그런대로 훼손되지 않은 육체입니다

  흑갈색 임신선과 난소에 생긴 낭종이 고작입니다

 

  남녀노소여

  행여 쓸모가 있거든 장기를 적출해 내다파시든지

  나를 토막내 보신탕처럼 끓여 몸을 보하시든지

  마음대로 하십시오

 

  처분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야말로

  더없이 평온한 순간입니다

 

  나는 밑바닥이고

  나는 구더기이고

  나는 고름집이고

  나는 똥으로 그득한 가죽부대입니다

 

  남녀노소여

  내 핏물이 밴 돌멩이를 다시 주워

  가차없이 던지십시오

 

  살점 한 톨 남지 않도록

  피 한 방울 남지 않도록

  유황과 불을 퍼부어

  부디 홀연히 사라지게 해주십시오

 

  비로소 허공만이 남은 자리입니다

  오롯한 자유입니다

 

 시집  『여자의 정면』(실천문학, 2016) 중에서

 

 


 

김선향 시인

충남 논산에서 출생. 충남대학교 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200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여자의 정면』(실천문학, 2016)이 있음. 현재 <사월> 동인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