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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석 시인 / 놀이의 방식
거미는 번지점프의 원조, 집을 짓기 위한 그 위태로운 곡예에서 놀이가 나왔다. 떨어지다 멈춰지는 지점, 아뜩함이 전율로 바뀌는 통점에 거미는 거꾸로 붙어산다.
암사마귀는 교미 도중 수컷을 잡아먹는다. 머리부터 먹는다. 머리가 없어진 수컷은 더욱 격렬하게 교미를 하며 죽어간다. 잔학성과 쾌락은 동일한 감각*, 그것은 머리와 상관없다.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증거이다. 개미의 생각은 앞선 개미로부터 나오고 앞선 개미의 생각은 또 그 앞에 선 개미로부터 나온다. 칠월 한낮 장례행렬처럼 늘어서 먹이를 나르는 저들로부터 우상이 나왔고 우상으로부터 계급이 생겼고, 그때부터 개미는 졸라매기에 충분한 허리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을 모두 헛것처럼 보이게 하고 그 헛것들 가운데 또 다른 헛것을 보여주는 환상마술을 본 적 있으신가. 카멜레온의 두 눈은 원형(圓形)으로 따로 도는데 두 눈알이 교차할 때마다 색깔이 변한다. 트릭은 몽롱한 실재
본능과 생각의 경계에 사는 해파리는 입과 항문의 구분이 없다.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생각한다. 생각은 배설이다 항문에서, 아, 아니 입에서 나온다.
* 보들레르
시집 『놀이의 방식』(시인동네, 2016) 중에서
김유석 시인 / 상처에 대하여
탱자 한 알이 툭 떨어진다. 아득한 적막에 젖듯 저대로 낙하하는 탱자는 겹겹의 가시 사이를 무사히 통과한다. 그만한 공간을 확보하여 꼭지를 물었거나 허공에 길을 놓을 만큼 가벼워진 생은 아닐텐데 제 몸 하나 다치지 않고 내리는 탱자의 자연함, 열매를 꿈꾸지 않고 떨군 꽃잎의 궤적인가 흔들림만으로는 다 버리지 못하는 미망이 스스로의 몸을 경계 삼아 푸른 광기를 잠재운 탱자알들은 가시 끝을 꿴 이슬방울처럼 씨내림 한다.
탱자나무를 감고 먼 길을 가는 호박넝쿨은 몸이 곧 길이다. 따끔거리는 곳마다 꽃을 피우고 쉬어가고 싶은 곳엔 열매를 매달며 장난처럼, 어쩌면 자해하듯 살 속에 가시를 찔러 넣는다. 무엇엔가 상처받는다는 건 그것을 사랑하는 일보다 환한 아픔인 줄, 온 몸을 쥐어틀며 견디어나가는 호박넝쿨은 박혀든 가시가 미처 생각지 못한 빠질 때 생길 고통까지를 살로 삭혀서 흠집 하나 없이 매끄란 호박덩이를 완고한 가시 사이에 저렇듯 매달아놓는다.
시집『상처에 대하여』(한국문연, 200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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