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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명서 시인 / 무중력 축제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8.

김명서 시인 / 무중력 축제

 

 

    오래된 책장

    사람의 손길과 멀리 떨어져 있다.

    책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혼돈

    한 권 한 권 꺼내 베란다에 펼쳐놓는다.

    추리소설과 판타지소설에서 뛰쳐나온 불규칙 동사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기웃거린다.

    돼지들이 여기저기 갈등을 부추긴다.

     

    늙고 병든 코끼리

    신중하게 주변을 탐색하는데 밀렵꾼의 시선과 마주친다.

    신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머나먼 동굴을 찾아 나선다.

    밀렵꾼의 총부리가 따라붙는다.

     

    돌아갈 은신처를 잃으면 이국을 떠도는

    난민이나 이방인

    두 무리는 죽음을 탐색하며 총부리에 시달렸다.

    코끼리는 그림책에만 살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 곁에 끝까지 남아있는 것은

    남루 한 벌.

     

    개발이 최선이라는 왜곡된 논리에 밀려

    밀림은 무참히 죽어가고 있다.

    점조직처럼 은밀하게 숨겨둔 동굴은 코끼리들의

    성전이며 무덤.

    검은 손에 상아象牙가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마지막 간곡한 마음을 춤과 노래로 전송한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1월호 발표

 


 

김명서 시인

2002년 《시사사》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야만의 사육제』(한국문연, 2016)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