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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지혜 시인 / 시가 존이라는 생각이 들 때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1.

한지혜 시인 / 시가 존이라는 생각이 들 때

 

 

여자의 안내를 받아 존의 방에 들어왔습니다.

빈 방입니다.

방금 존은 나갔고

빈 방에 앉아 등을 기대고 존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존의 방안은 넓고 책들 빼곡한 작은 책꽂이가 옆에 멀리 눈앞에는 장롱이 있고 그 옆에 난 허공 나는 복도로 나있는 문이라고 생각하며 존을 기다립니다.

 

존의 방이 아닌 오래된 나의 방을 둘러봅니다. 망으로 된 창문을 발견합니다.

방에 비하면 꽤나 넓은 창문인데 철망의 일부가 주먹만큼 구멍이 나있습니다.

방은 친근하고 창의 망은 좀 헐렁하지만 기억은 산뜻한

둘러보니 방안에는 여름 풀벌레 두어 마리가 이미 날고

창문 망 위쪽 엉겨붙어있는 거미줄에는 모기와 벌레들이 죽어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톡톡 망을 건드려서 거미줄을 없애고

아직 창문에 난 구멍에 대해 나는 고민하고 있다. 창문 옆의 벽과 문의 공간에 넣을 두께의 긴 널빤지를 어디서 구할지 생각합니다.

망으로 된 창문은 사각이지만 넓어보입니다. 바깥의 나무와 하늘이 보이고 망에 난 구멍으로 시원한 여름 공기와 흙의 냄새 바깥세상이 더 또렷하게 내다보여서 좋습니다.

 

이제 낭송을 위한 시간인가 봅니다. 존의 방에 사람들이 오고가고 나는 나의 입안을 청결하게 할 시간입니다.

 

오래 기다렸던 입안에서 냄새가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방안에 창문 크기만 한 핑크색 가루를 반듯하게 뿌려놓았고 나의 입안 청소를 위해 밖인지는 모르겠지만 낭송을 위해 수돗가로 향합니다.

 

나는 이 방안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시가 존이라는 생각이 들 때

지금도 나타나지 않은 존을 기다립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3월호 발표

 

 


 

한지혜(韓智慧) 시인

대청도에서 출생. 1987년 월간 《신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마음에 내리는 꽃비 』(한누리미디어, 1998)와 『차와 달의사랑노래』(소리들, 2005), 『두 번째 벙커 』(시산맥사, 2015)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