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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제영 시인 / 장미여관 김씨는 모른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1.

박제영 시인 / 장미여관 김씨는 모른다

 

 

   벌건 대낮에 장미여관 앞 큰 길에서 개 두마리가 흘레 붙었다

   이런 쌍넘의 개새끼들, 여관집 김씨가 뜨거운 물을 붓는다

   두어차례 물세례를 더 받고서야 붉은 몸이 붉은 몸을 빠져나온다

 

   투숙객의 자동차 번호판에 덮개를 씌우고 있는

   장미여관 김씨는 모른다

   대낮의 투명함을 견디는 것은 오직

   저 개들 뿐이란 것을

 

   여관을 빠져나오는데 백미러 속에서 개가 짖는다

   김씨가 다시 물을 붓고 있다

   두 몸이, 붉어져 하나가 된 몸이, 컹컹 운다

 

 


 

 

박제영 시인 / 어머니의 만성중이염

 

 

  피고름 파낸 저 귀,

 

  거죽 뿐인,

  뼈란 뼈 전부 녹고 삭은,

 

  안팎의 모진 욕이란 욕

  수 십 년 묵혀 마침내 다 품은,

 

  터엉텅

  빈

  북이다.  

네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막 깨어났는데, "바쁠텐데 왜 왔니" 하신다. 자식 셋 데리고 모질고 독한 사막의 건기를그보다 모질게 그보다 독하게 건너온 저 늙은 북이 내 어미다.

 

 


 

 

박제영 시인 / 일요일 오후 세 시

 

 

  죽어라죽어라 살아야 한다.

  유전된 누대의 기억,을 더듬어 온 일생

  짐작이 가고도 남을 저 휜 허리

  늙은 사내는

  제 몸보다 더 큰 박스더미를 싣고

  제 삶보다 더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일요일 오후 세 시

  뙤약볕 좁은 언덕길을 꾸역꾸역 오르고 있다.

  내려오던 마을버스, 올라오던 승용차

  그 뒤로 줄지어 선 자동차들

  경적소리 욕지거리 날카롭게 섞여서

  비키라고 빨리 좀 비키라고

  성난 개처럼 으르렁거린다.

  쌈 난 줄 알고 모여든 구경꾼들

  난장 한 가운데 꼼짝 없이 끼어버린

  이제 넘어지면 다시 못일어날지도 몰라

  죽어라죽어라 중심만은 놓지 않고 있는

  저 늙은 사내.

 

  일요일 오후 세 시를 지나고 있다.

 

계간 『정인문학』 2006년 봄호(창간호) 발표

 

 


 

박제영 시인

강원도의 춘천에서 출생. .1992년《시문학》을 통해 등단. 1990년 고대문화상 시부문 수상.  시집으로 『소통을 위한, 나와 당신의』가 있음. 현재 〈빈터〉의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