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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덕 시인 / 스펑나무 신전
나무의 뿌리가 앙코르와트 신전을 뒤덮어 기둥처럼 되어버린 광경을 상상해 보자
아득한 날, 씨앗 한 톨이 지붕 돌 틈에 떨어져 발아한다. 뿌리를 내리고 돌 틈 밖으로도 뻗는다. 틈은 들고 나는 일을 편애하지 않는다. 조건의 열악함엔 한 쪽을 버린 기형이 있고, 오랜 시간을 견뎌야했으므로 비가 오는 날은 돌의 입을 찾아 까무러치고 수만 번 거친 호흡으로 물밑을 헤엄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십년 이십년 백년 아름드리 뿌리가 된다. 돌들이 모이면 틈은 건축술이 된다. 그곳에서 뿌리는 푸른 지붕과 우거진 신전을 꿈꿨을 것이다
돌과 뿌리의 처지가 바뀌는데 몇 백 년이 걸렸다
수만 번의 달이 허물어져 다시 차오르는 동안 뿌리는 돌의 설계도가 되었다. 돌들에게도 뿌리가 생기고 더 이상 무너질 수 없는 서로의 신전이 되었다
당신도 없고 나도 없는 오직 지독한 사랑이다
시집 『스펑나무 신전』(시와표현, 2016) 중에서
이명덕 시인 / 도다리
가끔 뒤집기도 하지 바닥에 착 달라붙어 기다가도 생이 환장하게 답답할 때면 너울너울 물살이 되지 스스로 몸을 말려 한 줄기 꾸덕꾸덕한 바람이 되기도 하지
해종일 바닥을 기어야 납작 웅크린 바닥의 참맛을 알지 오늘 하루도 뒤집고 싶은 거지
사월의 수평선 같은 칼날이 스윽 들어오면 참았던 노을을 철철 흘리면 되지 곁들이는 한 잔 소주가 푸른 바다가 되고 붕붕 뜨는 취기가 되지
너덜너덜 살 찢겨도 믿는 뼈의 배열은 있지 바르면 바를수록 꼿꼿한 부챗살 모양 뼈는 다시 바다로 향하는 다리가 되지
시집 『스펑나무 신전』(시와표현, 201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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