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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숙 시인 / 우포늪에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1.

정숙 시인 / 우포늪에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생각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물은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푸우욱 썩어 늪이 되어 깊이 깨달아야 겨우

  작은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리라

  퍼뜩 생각났던 것이다

  사오천 만 년 전 낙동강 한 줄기가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분명히

  달면 삼키고 쓰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

  제 속에 썩혀서 어느 세월엔가

  연꽃 한 송이 꽃피울 꿈을 꾸었던 것이다

  조상의, 조상의 뿌리를 간직하려고

  원시의 빗방울은 물이 되고

  그 물 다시 빗방울 되어 떨어져 물결 따라

  흘러가기를 거부한 늪은, 말없이

  흘러가기를 재촉하는 쌀쌀맞은 세월에

  한 번 오지게 맞서 볼 작정을 했던 것이다

  때론 갈마바람 따라 훨훨 세상과 어울리고저

  깊이 가라앉아 안슬픈 긴긴 밤이었지만

  세월을 가두고

  마음을 오직 한 곳으로 모아

  끈질긴 가시들을 뿌리치고, 기어이 뚫어

  오바사바 세월들이 썩은 진흙 구덩이에서 기어이

  사랑홉는 가시연꽃 한 송이 피워내고 만 것이다

 

시집 『위기의 꽃』(문학수첩, 2002) 중에서

 

 


 

 

정숙 시인 / 休火山이라예

ㅡ처용아내 2 [벼랑 끝의 꽃]

 

 

  보이소예,

  지는예 서답도 가심도 다 죽은

  死火山 인 줄 아시지예? 이 가슴속엔예

  안직도 용암이 펄펄 끓고 있어예.

  언제 폭발할지 지도 몰라예.

  울타리 밖의 꽃만 꽃인가예?

  시들긴 했지만 지도 철따라 피었다 지는

  꽃이라예.

  시상에, 벼랑 끝의 꽃이 예뻐보인다고

  지를 꺾을라 카는 눈 빠진 싸나아 있다카믄

  꽃은 꽃인가봐예?

  봄비는 추적추적 임 발자국 소리 겉지예.

  벚꽃 꽃잎이 나풀! 나풀! 한숨지미

  떨어지고 있지예. 혼차 지샐라 카이

  너무 적막강산이라예.

  봄밤이라예. 안 그래예?

 

계간 『시와 시학』 1995년 겨울호 발표

 

 


 

 

 정숙 시인

경북 경산에서 출생. 경북대 문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 계간 《시와 시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  『신처용가』, 『위기의 꽃』, 『불의 눈빛』, 『불의 눈빛』, 『 청매화 그림자에 밟히다 』 등을 출간. 대구문학아카데미 현대시 창작반 강의.  포엠토피아 포엠스쿨 강의. 현재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작가회의 이사,

시와시학동인회 부회장. 2010년 1월 제1회 만해님시인상 작품상 수상. 2015년 12월 23일 대구 시인 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