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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진 시인 / 중부지방 한때 소나기
경기휴게소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평택을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서울에 가고 있구나, 라고 남의 일같이 멀리 생각되는 것은 찌는 날씨 때문이다 서울이 차츰 가까워질수록 하늘에 어둠 짙게 도사리고 있어 수원을 지나 판교에 다다를 즈음 정치 같은 먹빛 구름에서 계엄군 같은 장대비가 몰려오듯 줄기차게 쏟아지기 시작 눈물을 흘리며 차창들이 파랗게 겁에 질려 있어 내가 차내에 보호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꼼짝없이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불현듯 죄도 없이 압송되어 간다는 생각에 배추에서 꿈틀거리는 배추벌레처럼 조바심 늘 내 뒤통수의 눈은 눈물이 많아 바로 뒤에 앉은 깡마른 노인의 메마른 입술에서 시원하구나, 시원하구나, 말씀의 거품에 몇 개 남은 삭은니가 보인다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 서울 길눈이 어두우니 서울에서 서울의 약속을 지키기에 어려움이 많음 꼭 만나 뵈어야 할 분을 30분가량 만나기 위해 나 같은 경우에는 무려 여덟 시간을 버릴 수밖에 없고 차제에 보고 싶은 이 두셋 얼굴을 만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람 숲을 헤엄칠 수밖에 없어 서울이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바삐 살고 있는 저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가까스로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삽교천 경유 서산행 막차를 타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벗어날 즈음 하늘은 개고 따라서 밤의 어둠은 짙게 깔리고 있음 내가 풀려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휘파람새처럼 안도의 숨을 길게 풀게 되는 것을
시선집 『개울과 강과 바다』(시와표현, 2015) 중에서
박만진 시인 / 만리포에 가면
만리포에 가면 해수욕장 아우들이 넷, 정겨운 발자국을 제각각 만날 수가 있네 이를테면 다섯 형제인 셈인데 금시초문인 나는 사람에게만 형제가 있는 줄 알았지 미처 몰랐던 사실이네 낯선 풍경을 누리는 호강을 하려면 때로는 귀동냥이 필수 조건이네 누구이든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저기유, 해변을 끼구 쭉 따라가슈, 라고 지그시 웃으며 길을 가리켜 줄 것이네 만리포해수욕장이 맏이이고 천리포해수욕장이 둘째, 백리포해수욕장이 셋째, 십리포해수욕장이 넷째, 일리포해수욕장이 막내인 모양으로 구름포란 아명으로 불리어 일리포해수욕장을 자칫하면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번했네 사람들은 나이로 터울을 가늠하지만 그 형제들 터울이 천차만별인 것이 드높은 하늘이 아버지이고 드넓은 바다가 어머니이니 그럴 수밖에, 형만 한 아우 없다고 사람이나 해수욕장이나 매 일반인 듯하네
시선집 『개울과 강과 바다』(시와표현,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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