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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애 시인 / 파내온 나무 그림자
그 나무는 브니엘교회 입구 가지밭 모퉁이에 서 있었다. 먼 세상을 내다보는 자세로 산책에서 돌아오는 어느 날 나는 꽃삽으로 나무 그림자를 들어내기 시작했다. 토막 난 그림자를 날라 내 방에 장판처럼 드리웠다. 어둔 물관으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쪼그려 앉아 나는 습자지 같은 잎새에 혀를 대보거나 갈색 차를 마셨다. 그림자는 조금씩 자라났다. 가지밭 모퉁이 나무가 그러하듯 제 나무가 그리울 땐 시선을 옆구리 깊숙이 파묻거나 바람도 없는데 나를 떨어뜨릴 듯 가지를 흔들어대기도 했다. 길모퉁이 나무는 없어진 제 그림자를 탓하듯 산책길의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그 나무 밑에 서본다. 그러면 가느다란 가지를 활갯짓하며 내 발치로 고속 촬영하듯 빠르게 나무 그림자가 생겨났다. 가로등 환한 밤, 우리는 이렇게 만나곤 했다.
강신애 시인 / 여행의 추억
저 사과를 부수어 삼키던 입술은 어디로 갔나
주루루 모래가 쏟아질 듯한 술병을 기울여 한 잔의 술을 맛보았던가
책을 펼쳐 ‘기억은 깨진 제비꽃 깨져 위 아래 왼편 오른편으로 자라나는 종유석’ 이런 문장을 읽었던가?
돌들의 중얼거림에 둘러싸여 시간이 사람보다 빨리 늙어가는 이곳에 다녀가긴 다녀갔던가
그림자만 흔들흔들…… 숨결 박힌 화석과 줄넘기하고 있는
강신애 시인 / 최초의 性
눈을 떴을 때 까치와 거리 엔진소음이 들려왔다. 천천히 몸의 굴곡을 더듬어본다. 부푼 젖 그 아름다운 열매가 포실하게 안기고 유연하게 허리께로 미끄러지는 손 수줍은 물봉선을 건드린다.
칼과 불의 사다리를 타고 죽음 끝 사과 끼앗을 항성 깊이 심어 넣은 지옥의 시간들
호르몬이 호르몬을 본질이 본질을 바꾸는 고통을 신조차 알 수 없었으리.
거울의 젖을 훔쳐먹고 연명하다가 모순의 입술에 담겨 운반된 그녀
흩어진 소설책과 고양이가 그려진 물 컵도 그대로 갈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 제 속에서 쪼그리고 울던 여자를 비로소 꺼내놓았을 뿐.
초록과 먼지가 반복되는 세상 침대에서 불안한 아름다움 속으로 발끝을 세우고 내려오는 첫 아침.
계간 『정인문학』 2006년 봄호(창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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