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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승기 시인 / 이삭귀이개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3.

김승기 시인 / 이삭귀이개

 

 

혹시나 그대가 내게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나도 그대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싶을 때는 빛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종유석이 자라고 있는 동굴을 생각한다.

 

흐르던 용암이 멈추고 死火山으로 굳어지면서 耳鳴으로 귀 근질거리고 어둠 속 가난한 주머니마저 비어져 더 이상 광합성작용은 어렵겠다 싶어질 때 동굴 천장에서 문득 허리에 차고 있던 바구니 속으로 박쥐 한 마리 툭, 떨어지던 것을 기억한다.

 

내 생애 황금박쥐는 없을 거라고,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이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내게 들어온 그대와의 사랑을 오늘도 단단히 깁고 깁으며 이제는 나에게도 우렁각시 있음을 믿는다.

 

지금은 가닥가닥 여기저기 줄을 늘이며 쳐 놓은 통발 들어 올릴 때마다 이삭들이 가득가득 그대가 있어, 이만큼이라도 스스로 광합성을 하며 다시 꽃 피울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혹시나 그대를 잃는 날 앞으로 온다 할지라도 어둠의 천장에서 박쥐 떨어지던 추억 하나만으로도 남은 생애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나는 온달 그대는 평강이었음을 비망록으로 남긴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3월호 발표

 

 


 

김승기 시인

1956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졸업. 1995년 황금찬, 허영자, 이성교 추천으로 계간 《詩마을》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빈 산 빈 들에 꽃이 핀다』, 『눈에 들어와 박히면 그게 다 꽃인 것을』,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으랴』, 『울어본 자만이 꽃의 웃음을 듣는다』과 시선집『그냥 꽃이면 된다』가 있음. 2006년 제2회 세계한민족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