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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려원 시인 / 프렉탈을 먹는 저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2.

려원 시인 / 프렉탈을 먹는 저녁

 

 

  브로콜리와 양상추를 먹는 저녁

  포만과 졸음이 교차하다가 섞이는

  이 시간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닮은꼴로 태어나고 죽는

  일란성의 자연계를 뚝 떼어놓을 수는 없을까

 

  닮은꼴로 너는 내 안에 생성되기도

  내 안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왜 같은 맛의 음식을 매일 먹고

  같은 베개를 베고 같은 시간을 정해 잠깰까

  서로 크기만 다를 뿐

  우주의 별과 별의 간주로 울고 웃을까

  아직 그곳에서 나를 닮으려 유영하고 있는 너

  빛나는 것들은 멀어서 그렇다고

  너무 밝아서 우리는 서로 눈을 찡그리고

  아련한 것들로 눈을 감으려 한다는 것

 

  어린 날에는 왜

  큰 상처들만 있는 것일까

 

  인간이이서 인간의 고통이 있고

  내가 죽어야 할 죽음을 미리 본다는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닮았다는 것

 

  생일은 어떻게 한 살 더 많은 날을

  거르지도 않고 찾아오는 것일까

  그러다 버려지는 것일까

 

시집 『꽃들이 꺼지는 순간』(시와표현, 2016) 중에서

 

 


 

 

려원 시인 / 꽃들이 꺼지는 순간

 

 

  툭 하고 꺼졌다

  아버지는 캄캄한 방을 흔들어 촬촬 소리가 나면

  불꽃이 수명이 다한 거라 했다

 

  할머니에게 주려고 동백을 돌려 땄다

  그때 퍽, 봄이 꺼졌다

 

  알을 빻은 동백을 삼베주머니에 넣고

  쥐어짜던 두 손 사이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흘렀다

  거센 물줄기만 끌어 올리던

  할머니의 머리카락은 길게 아래로 흘렀다

 

  꽃은 전류를 타고 온다

  돌려 딴 동백을 받은 적이 있다고

  돌려 끼우면, 백열등은

  공중에 매달린 꽃이 된다고 지금도 믿는다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백열등을 돌려

  방을 끈 적이 있다

 

  떨어질 때 꽃술이 끊어지고

  검은 머리카락이 풀렸다

 

  꽃가지 하나를 꺾으면

  몇 송이의 꽃들이 툭 하고 꺼지는 순간이 있다

 

시집 『꽃들이 꺼지는 순간』(시와표현, 2016) 중에서

 

  


 

려원 시인

2015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시집으로 『꽃들이 꺼지는 순간』(시와표현, 2016)이 있음. 원통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 아동복지시설 주말 프로그램 예술(문학) 강사,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예술(문학) 강사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