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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일 시인 / 선택
모두들 잠들었다고 믿는 모모, 외로운 그림자를 끌고 송이처럼 피어 있는 25시 편의점에 가네. 차가운 어깨를 부딪고 진열되어 있는 캔 커피들. 편의상 편하게, 쵸이스 커피를 선택하네. 선택을 선택하네. 쵸이스는 언제나 쵸이스 맛이네. 습관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네. 生을 쫓아가는 시계바늘*이 잠들지 못하는 캄캄한 모모를 씁쓸하게 내다보네. 모모는 어디로 흐를지 아무도 모르네. 겁에 질린 십자로에 묶여 모모, 길을 잃네. 십자로 역시 모모를 목에 걸고 우왕좌왕 도네. 선택의 여지가 없네. 익숙한 파란불 속으로 속력을 내는 모모. 새벽 3시의 횡단보도를 선택한 누군가는 몇 달째 찢어진 플래카드에 매달려 목격자를 찾고 있네.목격한 가로수와 신호등은 묵묵부답이네. 울그락불그락. 목격이 흘러가네. 모두가 순간의 선택을 믿지만 언제나 선택이 선택을 좌우했네. 무수히 흘려보냈을 발자국을 기억하지 못하는 횡단보도에 모모, 왼발을 담그네. 저마다 철야의 동굴을 찾아 어디론가 흘러가야만 하네. 어디선가 철컥, 셔터 내리는 소리 들리네. 건너편 신호등이 홍등을 내다 거네. 모모, 홍등을 선택하네. 모모, 흘러가네. 휘청거리네.
* 모모의 가사
권정일 시인 / 무광택
오후가 길어진 만큼 그녀가 견뎌야 할 소리도 길어졌다. 물간 지느러미의 바다를 거래 하고 있는 금속성 목소리의 사내 미끄럽고 막막하다. 사내는 바다를 나른한 골목에 정차시켜 놓고 지루하게 흘러나온다. 가끔 지루함을 토막 내며 중얼중얼 칼이 번득인다. 캄캄하게 비어있는 그녀 몸 속 올 풀린 주름이 깜짝 흘러나온다. 오후 2시 43분이 바닥난다. 생의 한쪽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흘러나오는 것들 지루하게 짜여진 폭염, 지루하게 빛난다. 골목을 흘러나갔던 모든 소리들이 맥없이 돌아와 창가에 놓인다. 흘러내린다. 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알람은 끄지 않는다. 겹겹이 흘러 다니는 주름과 주름사이에 숨어 식물처럼 앉아 있는 실루엣 그녀, 유리창에 걸린 낮달이 박살난다. 넝쿨손 아래 녹색부전나비 죽음처럼 고요하다.
계간 『정인문학』 2006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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