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일 시인 / 발코니
확장하길 좋아하는 거실이 펼쳐지면 발코니가 있다. 발코니가 끝까지 걸어 나가지 못하게 유리창이 바깥을 차단하고 있다. 멀리서 허공 하나가 들어온다. 발코니는 공간이 생긴다. 여기는 내가 버린 메아리의 대답을 듣는 한때의 시간
오늘 내 눈은 허공으로 달리고, 어제의 내 눈동자가 나를 닮아 있다. 어디선가 새 한 마리 날아와 창 밖 유리난간에 앉는다. 숨을 잊어버린 순간의 나와 팔 다리 목소리가 없는 유리창과 눈알을 굴리는 새와
지독히도 가깝게 턱 선을 마주한다. 소리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눈동자를 쏟을 때, 우두커니 눈동자가 맺혀 흐른다. 함부로 흐르면 안 되는 것들. 유리창이 낭떠러지를 떨어뜨리자
“당신은 검은 눈동자를 가졌군요.” 라고 말하는 것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너머로 새가 날아간다. 눈이 검은 짐승의 마음으로 검은 눈의 짐승을 쓰다듬을 수만 있다면 그 까만 언어를 구분할 수 있을 텐데
은은하고도 까마득하게 날아가는 것을 그냥 바라보는 발코니. ‘그냥’이라는 말의 온도를 재는 발코니는 관계를 축소하기도 하고 미소를 과장하기도 한다. 유리창이 사람에게 준 선물이 있다면 발코니가 아닐까? 새를 버린다.
발코니는 아직 창을 가지고 있다.
월간 『시인동네』 2018년 7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려원 시인 / 프렉탈을 먹는 저녁 외 1편 (0) | 2019.06.12 |
|---|---|
| 조옥엽 시인 / 구례구역에서 외 1편 (0) | 2019.06.12 |
| 권정일 시인 / 선택 외 1편 (0) | 2019.06.12 |
| 손석호 시인 / 겉을 적신다는 건 (0) | 2019.06.12 |
| 김인구 시인 / 닥치고 봄, (0) | 2019.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