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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자규 시인 / 돌과나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2.

이자규 시인 / 돌과나비

 

 

  가볍지 않은 생각이

  가볍지 않은 바람을 앉히면

  소리 없는 말이 그려진다

 

  제자리서 힘을 잃은 사물처럼

  차이다가 버려진 돌에

  돌의 둘레만한 바람이 앉는다

 

  돌의 뿌리가 생각의 중심을 잡고

  꿈을 꾸는 자리

  바람의 무게만큼 날아오르는 나비 나비들

 

시집 『돌과나비』(서정시학, 2015) 중에서

 

 


 

 

이자규 시인 / 서각

 

 

  칼끝으로 숨소리를 심는다

  빛을 다진 生木을 묵향에 눕히어

  칼날과 바닥의 정점에 느린 거북을 키우며

  내심 푸르러 앙다문 서슬

  살점 저밀 때마다 느리게 기어오는 향기

  나이테 속으로 흘러들었던 낮달이거나 밤별들

  둥글게 물소리를 낸다

  풀내음 풋풋한 지난 시절의 그림자들

  나무의 홈에 기웃대어 기억을 파낼 때마다

  작은 풀잎 손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두 손 가득 풀잎을 담아 강물 위로 뿌리듯

  나무를 쪼아대는 동안

  낙엽처럼 파르르 떨리는 손끝엔

  붉은 꽃이 솟기도 해

  검은 핏물이 목판 위에 깃든다

  나를 거느리는 저 그림자는

  오래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수없이 부딪히며 모서리 깎아내는 거북이

  거칠어진 결 가득 붉은 꽃 찍어낸다

 

시집 『돌과나비』(서정시학, 2015) 중에서

 

 


 

이자규 시인

경남 하동에서 출생. 2001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물치는여자』,  『돌과나비』가 있음. 현재 대구시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