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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경숙 시인 / 흐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4.

고경숙 시인 / 흐미*

 

 

      위축되었던 여자의 몸에서

      버섯이 피는 소리

      그건 혼자 부르는 노래

      귀 닫아걸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과

      벌판 끝에서 만난 호수의 푸른 눈물이

      부둥켜안고 서로를 연민할 때 내는 신음소리

       

      지평선 끝으로 무거운 하늘이

      지상의 죽어가는 마지막 영혼들을

      어루만지기 위해 천천히 내려앉는 소리

       

      척추 깊숙이 검에 찔리고도

      사나흘 화려한 무희가 이끄는 대로

      정신없이 추는 접신몽처럼

      별들이 쏟아지는 소리

       

      여자는 남자가 떠날까 두려워

      몰래 훔친 남자 목소리를

      제 목울대에 감추고

      남자는 목소리를 찾는단 핑계로

      벌판 밖으로 떠나버렸다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떠나가는 남자와

      남겨진 여자가 함께 부르는

      결핍의 노래,

      돌아앉은 세월이 오래일수록

      여자의 목청은 탕진한다

       

      몸이 기억하는 그의 목소리

      죽어도 놓지 않겠다고

      조용히 뜯는 마두금에 맞춰 노래 부르면

      흐미, 멀리 말발굽 소리

      몸 안에서 남자가 오는 소리

      버섯이 피는 소리

       

      *흐미: 몽골의 전통 예술로 2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한 번에 내는 예술

 

웹진 『시인광장』 2019년 3월호 발표

 

 


 

고경숙 시인

2001년 계간 《시현실》로 등단. 시집으로 『모텔 캘리포니아』(2004), 『달의 뒤편』(2008), 『혈穴을 짚다』(2013), 『유령이 사랑한 저녁』(2016)이 있음. 수주문학상, 두레문학상,경기예술인상, 희망대상(문화예술부문), 한국예총 예술문화공로상 수상. 부천예총 부회장,수주문학상운영위원장, 부천시 문화예술위원, 부천의 책 도서선정위원장, 부천신인문학상운영위원, 부천시립도서관 운영위원, 부천펄벅기념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