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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설희 시인 / 벽이 온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5.

박설희 시인 / 벽이 온다

 

 

      밧줄에 의지해 암벽 하나를 간신히 넘어왔는데

      또 밧줄이 드리워져 있다.

       

      얼마나 가야 하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벽이 온다.

      한 손 한 손 되짚어 내려간다.

      내려갈 힘은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절벽에 서 있는 소나무, 꺾는 각도가 절묘하다.

      공중을 더듬으며 길 찾는 목숨들

      낭떠러지를 품고 산다.

      끝이라는 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

      씨앗을 잉태하는 것도 그 이유

       

      절벽에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나무마다 절벽이 있다.

      빛의 화살은 길고 짧아서

      목마르게 휘어지는 행로

       

      파르르 떨던 나뭇가지 하나가

      방금, 방향을 조금 틀었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3월호 발표

 

 


 

박설희 시인

2003년 계간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실천문학, 2008)과 『꽃은 바퀴다』(실천문학, 2017)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