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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영찬 시인 / 짐 자무쉬에게 묻고 싶지 않은 질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5.

김영찬 시인 / 짐 자무쉬에게 묻고 싶지 않은 질문

 

 

   버스운전사 패터슨의 아내 로라는

   행동예술가이자 요리사, 아기 대신 애완견을 키웠지

   버스운행을 쉬는 자투리 시간에

   패터슨은 습작시를 썼고

   잠꾸러기 그의 아내는 페르시아의 왕자가 된 남편 패터슨이

   은색 코끼리를 타고 거들먹거들먹

   시타델citadel의 대낮을 활보하는 꿈을 꾸다가

   늦잠 잔 날도 있었지

 

   패터슨왕국의 대형버스를 모는 대신 패터슨 부부가 넉넉히

   등 기대고도 남을

   거대한 코끼리 등짝이 필요했던 듯

   퀴노아 샐러드요리 솜씨에 기타연주까지 곁들여 업그레이드된

   여가를 즐기려는 로라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를 선호할 수밖에 없지

 

   책꽂이에는 월레스 스티븐스의 시집도 꽂혀 있지만

   가령,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에

   이런 것도 있기 때문이지

 

   “냉장고에 있던/ 자두를/ 내가 다 먹었다오// 아마 당신이/ 낼 아침상에 차려놓으려고

    / 아껴 두었던 것을// 용서해요/ 그 자두가 어찌나 달고/ 맛있고/ 차디차기도 하던지”

 

   짐 자무쉬가 스크린 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잔잔히 흘러가듯 사는 방식이

   모범적인 삶이라고?

   불협화음도 조용히 아이스크림처럼 녹일 수 있어야 금슬 좋은

   부부가 되는 거라고?

 

   시시껄렁한 질문을 차치하고 진눈깨비 질퍽거리는 극장 밖

   퇴계로의 한 선술집에 앉아 훌쩍훌쩍 울듯 마신

   깡소주에 대취하여

   집에 갈 생각만 버스 태워 먼저 보냈네

 

계간 『문파』 2018년 봄호 발표

 

 


 

 

김영찬 시인 / 구름의 망명정부2

 

 

  예바부엔나(Yerba Buena) 허브차를 우리는 시간,

  찻잔에 내려앉은   파리 한 마리와 얼떨결에

  겹눈 마주쳤지

  구름의 망명정부에서는 흔하디흔한 일?

  그건 아니고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장미를 떠올리니까 장미가 피어나고 있었지

 

  장미금지구역인데 어떻게 가시만 두른 장미가 멋대로

  피어날 수 있담?

 

  이건 진실이야, 구름공화국의 경비초소에는 당번병이 따로 없지

  교대병들은 휴가를 연장하거나

  애인이 면회 온 것을 핑계로 외출외박 후 결코 돌아오지 않지

  모두들 예바부엔나 허브 향에 취해 조는 사이

  국적 없는 흰 구름이 솟아올라

  허리 아래는 무너지지만

  제 철 만난 줄장미가 마음껏 몸단장 뽐내도록 놔두지

  그거야 충분히 그럴 수밖에 아무도

  남의 일에 간섭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런데 이건 아닌데, 입국심사대엔 아직 계류 중인 구름장미가 한 묶음

  날개라곤 없는 뜨내기 장미구름도 한 무더기

  드높은 콧등을 타고

  모두들 높이 떠 흘러가고만 싶을 뿐

  이건 진짠데,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흘러가버리도록

  놔둬도 될 텐데

  차를 달이다만 찻잔을 뒤엎어도 되는 시간

  오갈 데 막막한 사막의 바그다드카페,(Cafe Baghdad)에 갈 일이라곤 애당초

  전혀 없었지만 그런데 아마

  아마도 곧 갈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길 것도 같다고

 

  함께 떠나겠다는 무리들이 식은 커피잔 주변에 몰려든다.

 

  이건 정말, 밀항한 구름을 눈감아준 유리창의 이빨이 흔들리도록

  두려워할 일인데

  카페를 찾아온 가객들은 한결같은 장미향 흡입의 마니아들

  뜨내기구름이 빚은 향유를 몸에 바른 뒤

  특별한 기분에 들떠

  구름의 엉덩이를 쓰다듬지

  혼몽 중에

  장미의 본고향인 여기가 바로 성지라고

  여기에서 비롯된 분명한 속살은 마치 청춘을 되살릴 듯

  강렬한 것이라고

 

  가객들은 그렇게 끝내 감격스런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초라한 행색에 혼란했던 대낮의

  오후 3시

  찻잔 난간에 불시착했던 파리 떼의 황망한 변신을 망명객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필경

  울먹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렇지만 마뜩찮은 이야기, 꿈꾸고 싶은 와중의

  내 졸작 시의 행간에 미끄러진 파리 한 마리가

  하필이면 된똥을 쌌다.

  퇴고 중인 나의 엉터리 설문지

  거기에 나쁜 대답 대신 침묵을 지키는 독자들을 대변하듯

  나를 꼬나본다.

  소심한 그자들과 함께 사막의 한가운데

  바그다드의 카페로 떠날 명분을

  그런데 나는 어디서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툭하면 바그다드로 출장 가겠다고 차표를 끊는 그자들은

  모래바람 부는 카페의 창가 쪽 테이블을

  선점하겠지

  그리고는 뜨거운 예바부엔나차가 미처 끓기도 전에

  골치 아픈 삶

  복잡한 난제들을 쓸어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등을 기댈 것이다

  누가 말릴 수 있으랴

  사막을 가로지르는 떨거지들의 행렬이 나날이 거칠어지면

  벌써부터 그 길은

  황량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정답 모를 질문과 정답이 필요 없는 응답, 사막화 돼 가고 있거나

  사막화 된

  알 수 없는 저녁이 기어이 닥쳐온다

 

  낮에 구름의 이동경로를 자세히 봐둘 걸 그랬나?

 

  비행기가 비행운을 금 긋고 지나간 하늘에 어설픈 밤이 펼쳐지고

  들장미는 푸른 밤의 잎을 떨궜지

  성지를 돌고 온 순례자들이 휘파람을 불어댄다.

  마치 가슴 한켠에 봉분이라도 들여앉힐 듯이

  민감해진 밤

  낡은 문짝들은 삐걱삐걱 야릇한 신호음을 보내고

  사막은 불을 밝혀

  길을 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카페바그다드가 이윽고 문을 연다.

  빗장을 풀고

  오지 않을 손님을 끝까지 고집 부려

  기다릴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밤이 왕소금 모래알을 뿌린다.

  그 뒤로

  달빛에 밀린 꽃구름이 번진다.

  카페테라스에 여장을 푼 구름나그네는 쉽게 잠이 올 리 없다.

  잠결에 문득 일어나 장미향 퍼지는 곳

  어디 론가를 향해

  행방 묘연한 구름에 모습 감추기도 한다.

  그리고 아무도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월간 『시인동네』 2017년 11월호 발표

 

 


 

 

김영찬 시인 /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에 함부로 없는 것들

 

 

  아르장땅(argentan)에 없는 것은

  헤테로토피아에 있고

  헤테로토피아에 없는 것은 아르장땅에 있다

 

  아르장(l'argent, 프랑스어 純銀이자 돈, 곧 財貨)이다) 아르장 ‧ 아르장,

  돈줄 땡기게

  기왓장 깨지는 집들 즐비한

  아르장땅의 거리들

 

  아르장땅을 용케도 벗어나 멀고먼 폐허의 양지쪽

  햇볕에 둔감한 아가위나무 울타리 외곽에는

 

   세상과의 불가피한

                         경계를 고집하는

                                            마을이 하나쯤

                         이름만으로도 남아 있어 어느 날은 그리도 쉽게

       깜박이기도 하는 법

 

    거기서 쉽게 늙어죽을 생각에 미동조차 아끼는 길고양이들은 밤마다

    발음도 불분명한 아르장땅의 사투리로 가르릉 갸릉

    찌그러진 양은냄비 소리를 낸다

 

        아르장땅에 없어도 되는 것들이 그런데 어째서

        헤테로토피아의 편의점에는 버젓이

        있거나 있어야 하고

          헤테로토피아에 있거나말거나 아무 상관없는 일들이 어찌하여

          아르장땅에서 함부로

          발생하는지

       왜 그래야 물풍선 터지는 희열이 치솟고 짓무른

       의식은 양철지붕 밑으로 녹아내리다가

       삭아버리도록 방치하는지

 

아르장땅의 자치구에서는 한 포대기 은화를 가득 채운 돈자루가 찢어진다. 찢어진 돈자루에 발등 찍히는 불상사가 비일비재 너무 잦은 사건들을 일컬어 공짜로 꾼 길몽쯤으로 해석해버리는 원로들. 그런 관행에 익숙해진 족속들의 턱수염 아래로는 아직도 헤테로토피아의 물안개가 찌걱거린다.

 

월간 『시와 표현』, 2018년 3월호 발표

 

 


 

김영찬 시인

충남 연기에서 출생. 외국어대 프랑스語과 졸업. 2002년 《문학마당》과 2003년 《정신과 표현》에 작품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와 『투투섬에 안 간 이유』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