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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천순 시인 / 오래 달인 어둠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4.

박천순 시인 / 오래 달인 어둠

 

 

  창백한 태양 앞에서

  내 안의 어둠을 달인다

  바짝 졸은 어둠이 목젖에 엉겨 붙는다

  입 안의 혀가 무겁다

 

  당신과 나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나뭇잎이 혓바닥을 세워 상처 난 하늘을 핥고 있을 때

  함께 껴안은 달빛

 

  그 달로 목구멍을 환하게 채울 수 있을까

 

  부풀었다 말라가는 당신

  바스락 흩어지며

  검은 노을로 눈썹에 걸린다

 

  오래 졸아든 시

  쓴 환약으로 목에 걸린 당신

 

시집 『달의 해변을 펼치다』(천년의시작, 2016) 중에서

 

 


 

 

박천순 시인 / 떠다니는 잠

 

 

처음 보는 물고기들이 수면 위에서 퍼덕거린다 눈자위가 수척해지도록 제 비늘을 하나씩 떼어먹는 돌고기는 어느 소용돌이 속을 헤매다 왔을까 붉은 눈알과 푸른 눈알이 부딪혀 깨진다 놀란 내 눈동자가 흘러내린다 비에 불은 창문이 터지고 어두운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물속에 잠기는 방, 깨진 유리를 가슴에서 꺼내 꿰매기 시작한다 물풀이 흐느적거리며 발목에 감긴다 발길질을 할수록 엉켜드는 잡념들, 시퍼런 핏줄을 따라 수만 개의 가시가 돋아난다 눈알이 빠진 연어가 뼈만 남은 몸으로 강을 거슬러 오르고 뻐끔거릴 때마다 검게 질식해가는 아가미, 소리치는 입들이 물결무늬 벽에 걸리고 침대는 지느러미도 없이 혼자 온 방을 떠다닌다

 

시집 『달의 해변을 펼치다』(천년의시작, 2016) 중에서

 

 


 

박천순 시인

1965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11년 《열린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해변을 펼치다』(천년의시작, 2016)가 있음. 2015년 제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