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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미선 시인 / 프린세스 모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4.

송미선 시인 / 프린세스 모텔

 

 

  가까이 오면

  자동으로 문이 열립니다

 

  제 꼬리를 끊어버린 고양이처럼

  네온사인도 켜지 않은 모텔 옆구리

  모르는 사람들이 숨어든다

  발끝에서 나뒹구는 페트병처럼

  투 툭, 주름치마가 헤프게 벌어진다

 

  치마 속으로 숨어드는 길고양이

 

  위태로워 보이는 등을 자동문이 급하게 껴앉는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며

  잠을 묶어두려고

  들고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가려준다

 

  성가시게 따라오는 길고양이를 쫒으며

  얕은 수에 넘어가는 페트병 속에

  몇 가지 변명이 찢어진 주름을 정돈한다

 

  자동문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골목은 네온사인으로 번쩍인다

  주름 탓이라고 우기는 이름을 모텔 출입카드처럼 갖다 대는데

 

시집 『다정하지 않은 하루』(시인동네, 2015) 중에서

 

 


 

 

송미선 시인 / 블루스를 추자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사다리의 검은 건반

  한 걸음 다가서면 늘어나고

 

  바람의 머리끄덩이 끌고 와

  블루스를 추자

 

  연못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걷어와

  외면하고 돌아서는 파도 소리 잡아와

 

  사랑을 남발하는 내가 지겨워

  당신은 빈 악보를 채우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듯 블루스를 추자

 

  주파수는 꿈과 잠멀미 사이에서 노래 부르고

  뒤엉켜버린 하루살이처럼

  내일을 지우고 블루스를 추자

 

  당신은 간지러운 내 그림자

 

  스텝도 버리고 리듬도 버리고

  백치의 기억대로 하나 둘 하나 둘

  잔디밭 이슬이 발바닥 간질이는 대로

  블루스를 추자

 

집 『다정하지 않은 하루』(시인동네, 2015) 중에서

 

 


 

송미선 시인

2011년 《시와 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다정하지 않은 하루』(시인동네, 2015)가 있음. 현재 계간 『시와 사상』 편집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