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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 죽여주세요
엄마를 죽여주세요. 오오, 그녀를 죽여주세요. 새날이 오면 옷을 벗고 오오, 여자가 죽었다, 여자가 죽었다, 늘어진 협곡에 핏빛 조등을 달게 해주세요. 오, 그녀가 신들 앞에 앉아 꽃처럼 벌어진 저 가랑이를 닫고 오, 쪼글쪼글 오무린 입을 열게 해주세요. 그리하여 신들의 정원에, 돼지도 없고 뱀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게 해주세요.
도마 위의 도마뱀들 떠나고 갈비뼈를 굽던 오븐도 텅 비었는데
나비를 만난 적 없는 어둠의 꽃술들, 아아- 지옥 앞에서 눈도 없고 발도 없고 뼈도 없는 것들이 온몸을 떨고 있어요. 몸이 몸 안 저편의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어요. 검은 꽃을 열고 들어가고 있어요. 두 개의 머리와 두 개의 등과 두 개의 피 묻은 검은 꽃……, 헐벗고 굶주린 안쪽, 어머니들의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어둡고 습한 미궁 속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오래전, 검은 잠을 헤엄쳐나온 여인이 눈썹을 허물고 손톱을 허물고 입술을 허물어 자궁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밤 아래는 밤, 발 아래는 발, 여자의 아래는 여자, 붉은 등이 흔들리는 거리에서
여자를 삼킨 여자가 어둠에 흑발을 풀고 있는데, 저녁의 길 위에 하얀 실밥을 풀며 여자에게서 난 여자가 여자에게 돌아가고 있는데,
온몸의 혈관이 열리는 새빨간 적요의 밤, 오오, 엄마를 죽여주세요. 이 세계와 화해할 수 없는 암탉들, 하얀 배를 탄 채 멀미하고 있어요. 가볍게 버려지던 호흡들이 거칠어지고 푸른 눈썹을 담은 여행가방이 여인들 곁을 떠나고 있어요. 아랫도리에 긴 혀를 가진 이들과 여자를 사랑한 여자를 거두어주세요. 제발 엄마를 죽여주세요.
웹진 『시인광장』 2019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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