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인숙 시인 / 누가 내 거울을 가져가는지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18.

김인숙 시인 / 누가 내 거울을 가져가는지

 

 

우리 집에는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어머니와

귀퉁이 살짝 금이 간 할머니가 아직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를 만난다. 소갈머리 다 빠진 뒤통수를 닮은 여편네를 보고 있다. 언젠가는 할머니를 만난 적도 있어 악수를 하려고 손을 내밀면 그녀는 항상 왼손으로 내 손을 피한다. 나는 그녀들의 손목을 비틀고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을 때가 있다.

 

거울 안쪽에서 늙어가는 수많은 어머니와 수많은 어머니들로 강을 이룬 두물머리에는 내가 없을 때 슬쩍슬쩍 나를 훔쳐보고 가는 여럿의 딸이 있다. 그녀들은 슬쩍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항상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나에 대해 아무 확증도 없는 그녀들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머리에 리본을 꽂고 내 취향대로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입히는데

 

누가 자꾸 거울을 가져간다, 내 거울의 투명한 안쪽을 뒤져 그동안 내가 버린 나의 낡고 늙은 얼굴들을 찾아내고는 또 짓궂게 살짝 비틀어진 입 꼬리까지 거울 밖으로 던지는 것이다.

 

거울 속에서 웃던 그녀들

나는 자꾸 생소해진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3월호 발표

 

 


 

김인숙 시인

2012년 月刊 《現代詩學》 신인작품상 수상으로 시인 등단.  2017년 季刊 《시와세계》 평론상 수상으로 평론가 등단. 제 6회 한국현대시협 작품상 수상. 제 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