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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순 시인 / 자루와 자두
자루에는 새가 들어 있고 자두에는 씨가 들어 있습니다. 자루는 움직일 수 있고 자두는 굴러갈 수 있죠. 자루는 자두를 의심하기 좋아하고 자두는 자루를 벗기기 좋아합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자루와 자두에 관한 내연의 질서.
자루는 자두를 조용히 이끌 수 없을까요. 새를 날려 보내면 자루는 꺼지고 자두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자루와 자두는 함께 묶을 수 없습니다.
물에 빠진 자루를 무시합니다. 물에 뜬 자두를 툭 건집니다. 자루를 건지는 일은 의욕이 필요하지만 자두를 모른 척하는 일은 식욕에 관계되는 일 자루 앞에 놓인 자두.
자루를 자두에 담습니다. 자두밖에 보이지 않는 자루 눈앞이 캄캄한 자루 배부른 자두 입이 무거워서 또박또박 눈물 흘리는 자두 자두에 갇힌 자루의 불안 자루에 눌린 자두의 자유
자두는 어디서부터 지워야 합니까.
웹진 『시인광장』 2019년 3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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