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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심 시인 / 목각인형
목각인형은 눈썹이 없습니다. 눈알을 잃었습니다. 구멍 안으로 무심히 빈 들이 지나갑니다. 하역노동자는 턱이 없습니다. 길고 푸른 수염 자국이 가슴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오래전,
푸른 가시벌레가 목각인형을 떠났습니다. 목각인형이 짧은 옷소매를 당기지 않아도 산동네의 지붕들이 헝클어집니다. 목각인형은 뿔이 없었습니다. 하역노동자는 두 손을 타인의 몸에 묻었습니다.
겨울나무에 걸린 일곱 개의 손가락은 누구의 것입니까. 목각인형의 텅 빈 눈 속으로 겨울 숲이 내려옵니다. 푸른 작업복의 눈썹이 지워집니다.
목각인형은 목화솜의 기분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하역노동자는 공중 높이 매달린 목 때문에 울 수 없습니다. 라디오의 저녁이 가장 먼 곳의 모퉁이를 돌고 있지만, 그는 새들의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습니다. 난로 위, 저지대의 밤이 눈꽃 지나간 자리를 둥글게 말리고 있을 것입니다. 등이 푸른 남자는 항아리에서 자란 청어를 생각했을까요. 숫잠에서 깬 고양이들이 눈먼 목각인형의 정수리를 핥습니다. 버려진 속날개 아래 빨래들이 희었습니다.
목각인형은 버려진 담배꽁초에 붙은 숨소리를 닮아갑니다. 길을 떠난 사람은 길이 될 수 있을까요.
빈 유리병 속으로 내려온 물고기자리가 목각인형과 하역노동자 사이를 흘러 다닙니다. 겨울의 문장이 사람 밖에 사람을 그리고 있습니다.
계간『포엠포엠』 2018년 봄호 발표
최형심 시인 / 공방의 인어들
섬세한 주소들을 다듬는 한낮, 양송이스프처럼 물오른 여자애들이 귀를 만지며 귀가 중입니다. 마른 장미의 모음이 기억나지 않아요. 오래 기른 눈썹 사이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검은 피를 가둔 나비가 음악처럼 귓속을 흘러간다는 사람과, 한나절 고요한 살점을 발라 여름을 그리는 사람과, 고양이의 밤을 구하러 간 고양이와 원탁에서 연대기를 쓸래요?
사소한 도형이 각을 잡는 동안만 점선처럼 성실하게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정오가 바람과 일가를 이뤄 초록물고기의 성장판을 만지네요. 오래된 물잔 속에서 붉은 우체통이 몸을 씻고 있어요. 여름의 창문이 바다에 수몰되고
아무도 물에 젖지 않는 물잔을 사냥하지 않아요. 혀를 알기 전의 발음들이 유리창에 박힙니다. 산스크리트어를 처음 읽는 기분으로, 철지난 명상법으로 하지의 수면을 건너갈까요?
누군가를 겨냥한 마음……, 양말을 벗고 이내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리듯, 계급이 낮은 신들이 바자울에 가 팔을 벌리듯, 푸른 의자에 앉아 기침을 합니다.
물이랑에 둥글게 새긴 알리움의 여름에는 문이 없습니다.
계간『포엠포엠』 2018년 봄호 발표
최형심 시인 / 종이 날개를 가진 저녁
공장지대의 낮은 밤이 회색 겨울문을 두드린다. 그루잠을 자는 아이들 사이로 고장 난 바람 불어온다. 연 날리던 아이들이 가벼운 신을 신고 나비리본 위 노란 선잠을 털어내면 소녀들은 작업복을 벗는다. 종이날개를 가진 것들은 겨우살이에 가 살을 붙이고 있을까. 연인의 눈을 도려내 제 눈에 붙인 이들이 겨울의 숙련공처럼 잠들었다. 남의 집 문 따는 소리에 시를 읽던 사미니들이 서둘러 둥지를 허무는 곳……. 계급이 낮은 신들이 겨울나무에 가 팔을 벌리면 속눈썹의 고요가 눈 내리는 기항지를 다스린다. 비문증을 앓는 연인들의 푸른 촉은 어디로 갔는지…….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산스크리트어를 읽는 기분으로 하얀 의자에 앉아 기침을 한다. 여공들의 귀밑머리를 그리던 그림쟁이가 고양이 머리 위로 떠간다고 줄공책에 빈 숲이 들어와 환한 부레를 연다. 은어 떼와 놀던 전령사들의 마지막 표정은 추운 뼈에 다다랐을까. 해거름에 걸린 은가지들, 날개보다 무거운 영혼은 없다고 겨울새의 날개를 접어준다. 적란운 밖으로 제 속을 긁으며 달 뜬다. 시간은 얼마나 먼 거리를 와서 입술이 되는 걸까. 사랑을 따라간 행성들이 돌아오고 있다. 폭설을 뒤집어 쓴 죄수들 눈 깊어진다. 밤의 내용물이 짐수레에 남은 살점을 파묻고 있다.
월간『태백』 2017년 11월호 발표
최형심 시인 / 련(蓮)
햇볕에 내놓은 열일곱 해의 마음이 반그늘에 멈췄습니다. 수분(受粉)이 끝난 날개를 만지면 창호지 밖의 수은등마저 은유였습니다. 수련의 수위(水位)가 그리웠습니다.
수변에 나온 옛집 근처에서 사다리를 지나는 사내들을 봅니다. 늙은 선인들이 북방으로 가던 날 민물고기와 함부로 앉아 탁주를 마셨습니다. 오래된 무릎의 기원이 선한 반역자들의 통점 같았습니다.
기침병에 걸린 얼굴을 뜰채로 건져 올리던 시절……, 물 위에 이마를 대면 한 아이가 하늘소의 울음소리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여름을 터득한 망초들의 멀미가 꽃의 보푸라기를 훔치는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염소들은 왜 젖을까요. 후렴만 아는 어린 새와 등 뒤의 유월은 서로를 모릅니다. 어금니가 없는 물고기들은 물 아래 묻혔던 걸까, 눈동자가 무거운 이들이 물가를 떠나고
하지에는 하선하는 들꽃무리의 침공이 아팠습니다. 청호접을 통과한 하루가 물가에 와 잠잠해집니다. 물결무늬로 다스리는 수역(水域)에선 반만 지워진 발꿈치를 가진 자들이 흐릅니다. 소리를 낮춘 정원 저편, 어린 새가 속눈썹을 벗어두고 갔습니다.
월간『태백』 2017년 11월호 발표
최형심 시인 / 투병기
숲으로 간 수레는 오지 않았다. 눈 밑이 붉어진 아이가 목로(木壚) 위에 물잔을 놓쳤다. 청동빛 맨발을 본 너의 이마가 환했다.
누군가 환상(環狀)의 발자국을 그리고 있었다. 고요 안으로 고요가 고이고 있었던 걸까. 귀가 슬픈 짐승이 파란 손금을 읽었다. 너는 모르는 숲에 이마를 대고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절반이 숲인 여자와 나란히 누웠던 때가 언제였더라. 문밖에는 너무 많은 문이 있었다.
한밤의 푸른 공기처럼 등이 젖는데 천장의 쥐들이 천상처럼 고요했다.
아흐레 지나 다시 아흐레……. 한쪽 눈썹만 지우고 떠난 여자가 있고, 벽에서 걸어 나와 벽으로 돌아간 아이가 있고,
죽은 가지에 걸린 낙하산처럼 고요가 매달려있다. 미닫이 너머로 미처 떠나지 못한 봄을 나팔꽃이 듣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5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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