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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시인 / 통 큰 여자
반지를 잃어버린 노인들이, 케케묵은 세탁기 그 통 큰 여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여자는 큰 덩치의 안간힘으로 버티다 빗물 질척이는 바닥에 팽개쳐졌다 대성통곡 입이 벌어졌다 눈물인 양 땟물만 흘러나왔다 반지를 어디에 숨겼어? 통이 커도 여간 큰 게 아니구먼 은혜의 집 노인들이 함부로 몸을 뒤졌다 속엣 것을 모두 게우게 했다 몸의 저 밑바닥에서 나온 동전과 단추 몇 개 금간 사랑 잃어버린 세월 밤마다 찾아오는 허리 통증과 어깨 결림······지독한 것! 아무리 찾아도 반지는 없다 오지랖 넓은 가슴통이 빗물로 축축하다 굵어지는 빗줄기에 진저리치며 노인들 돌아섰다
고물 수거차가 왔다, 녹이 슨 밑동 휑하니 가슴을 도려낸 통돌이 세탁기를 번쩍 들어 올려 싣고 간다 살아온 만큼씩 제 영혼을 떼어주다 사라지는 생처럼
시집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문학세계사, 2015) 중에서
정미 시인 / 수장(水葬)
세탁기 하나 노인병원 마당 귀퉁이에 모로 누워 비를 맞고 있네
문짝 떨어져 휑하니 드러난 가슴 날마다 빨랫감을 품속 가득 안던 커다란 몸뚱어리를 빗물이 씻겨 주네
물목을 건너는 행상인처럼 벌컥벌컥 맹물 마셔 대며 일하던 강철 몸이 녹슬고 혈관 터져 비로소 일에서 놓여난 노구의 저물녘
노인들의 떼를 곧잘 받아주던 폐 세탁기 빗방울 세례를 받으며 한세상 건너가고, 좁아터진 세탁실에서 몰려나온 듯한 저 허리 끙끙 앓는 소리 흐느껴 우는 소리 빗소리와 섞여 흙탕물로 튀고, 흘러내리고
흙물이 쓰는 그 조서弔書를 치매의 우리 어머니 창가에 몸져 누워 덧없는 눈길로 읽고 있네
시집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문학세계사,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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