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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덕 시인 / 투명인간
너는 오늘도 나를 보지 못하고 손을 잡았으나 장갑만 남았다 한다 말을 받았으나 구겨진 포장지만 잡힌다 한다 눈을 보았으나 검은 창이 다가선다고 한다
히히 나도 너를 보지 못한다는 것
유령의 집으로 들어간 우리 공기는 더없이 포근하고 이마가 시리게 차갑다 화분들은 생기가 넘치고 눈치 없이 시들어간다 냉장고는 조용히 굴러가고 악다구니 지른다
나의 신전에는 너의 의자가 없고‘ 네 거울 속에는 나의 저녁이 없다
이상한 뒤죽박죽, 근시안이 자라는 안개숲
그 틈을 비집고
광택을 낸 입술로 다 보여줄게요 보여줄게요 한 생이 식기 전에 다 보여줄게요 보여줄게요
나는 너의, 너는 나의 그릴 수 없는 문장 부호 물오른 달변의 뒷면
투명한 그늘을 뒤집어쓰고 재주를 한껏 피워보는 우리는
시집 『너무 많은 입』(문학세계사, 2015) 중에서
양수덕 시인 / 근처에
개미들이 방을 빠져나가고 개운하지 못한 잠이 폭설처럼 내리고
눈 부릅뜬 검은 문
할머니, 천장 주위에서 떨면서 내려다본다 모로 누운 채 굳어버린 자신의 사지와 풀린 눈 밥공기에 말라붙은 밥알 꿈과 생시를 덮고 있는 때 절은 꽃무늬 이불을
소리는 바깥세상에서 끓어오르고 말문 닫힌 방의 높다란 방음벽 안쪽에서 하얗게 엎질러진 묵음들 낮인지 밤인지 몇 달이 지난건지
약통 곁 한 벌의 수저 곁 하얀 머리카락 곁 서서히 가까이 파고들어 수의를 짰던 얼음뼈
검은 문 밀며 터진 맨발로 서성거리는 할머니, 불려진 어둠 자락을 움켜쥔다 어디로 갈거나
시집 『너무 많은 입』(문학세계사,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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