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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양해열 시인 / 고수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1.

양해열 시인 / 고수

 

 

  1.1에서 2.9 사이의 난이도로 입수하는 비오리,

 

  공중에서 세 바퀴 반을 굴러

  산 그림자가 놀라지 않게 물풀이 다치지 않게 날개 접고 다리 뒤로 뻗어 몸의 곡선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방금 사선으로 잠수한 비오리,

  강물의 속살을 뜯어 물면서 푸우, 쏟아낸 하늘 몇 모금 구시렁구시렁 살아나 수면 위로 피어오르더니

 

  꽃, 꽃, 꽃, 물꽃을 딛고

  피라미가 비오리 혀, 독설을 물고 훨훨 타는 갈밭 위로 붉은 노을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든 찰나

 

  아, 공중사리탑

 

  그가 낡은 처마 끝으로 갔다

  고난도의 다비식, 전광판도 기록하지 못했다

 

계간 『애지』 2007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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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열 시인 / 베이비 디자이너

 ㅡ배아복제1

 

 

당신 머릿속에 자궁이 있어요

 

넌 어디에서 태어났니? 침대 위에서? 보리밭 샛길에서? 자동차 속에서? 아니 시험관에서...... 아이 진부해, 이 자판기는 아기를 팔아요 투입구에 30캐럿 다이아몬드 넣고 스타트버튼을 누르세요 반죽에 소스, 토핑 얹고 피자 한 판 굽듯 3분이면 돼요 흰 피부 검은 머리 붉은 입술 백설공주도 맞춤형 아기의 원조예요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 가는 시간* 을 보았나요 늙은이로 태어나 나이 들수록 젊어지고 어린 아이가 되어 핏덩이로 죽어가는 악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스터 버튼, 아이도 하나 낳았는데 혹, 자기 닮지 않았나 갓난애 손가락 발가락을 지폐 세듯 넘기더군요

 

아아 내 아이는 나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손오공의 키 삼장법사의 귀 저팔계의 코와 머리통을 물려주긴 싫어요 버튼을 누를 거예요 랄랄랄라 어서오세요 원하시는 대로 고르세요 랄랄랄라 아이큐 190 키도 190 그래 푸른 눈의 장동건이 좋겠어요 하버드 거쳐 신밧드 담요 타고 할리우드로 가는 내 아들, 신나잖아요

 

나오미 캠벨처럼 늘씬한 당신, 뱃속에 아기를 키우다니요 주문하면 돼요 아이보리 글러브를 낀 지 십년이 넘었어요 권투하는 느낌의 섹스, 나 이제 지겨워요 처음부터 오랏줄로 묶었어야 했어요 21세기 탄생의 정관(定款), 내 죄 많은 호스 말이에요 하하하하 저기 죄 짓지 않은 아이가 있어요 사이보그처럼 뭐든지 알아서 척척, 저 유전자를 사올 거예요 아기자판기 버튼을 힘차게 눌러요 우리,

 

당신은 머릿속에 자궁이 있어요

 

* F. 스콧 피츠제럴드 원작 단편소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을 개작하여 만든 데이빗 핀처 감독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계간 『애지』 2009년 가을호 발표

 

 


 

양해열 시인

전남 순천에서 출생. 2006년 《애지》신인상 〈미늘〉 外 4편이 당선되어 등단.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조). 시집으로 『영산수궁가』(지혜, 2011)가 있음.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