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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현채 시인 / M-4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0.

이현채 시인 / M-4월

 

 

  가로수마다 연둣빛 나뭇잎이 팔랑거리는 사월의 풍경 속에

  허름하고 오래된 뒷골목이 안개로 가득 차오르고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필름 한 조각이

  불면의 그림자로 다가와 앉는 밤

  라일락 꽃 향기가 바람에 날린다

 

  사월에 꾸는 꿈은 산자와 죽은 자의 통로

  자신을 만나는 공간이다

  망각의 심연 속에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것을 떨어뜨릴 때가 있다

  사소한 장난처럼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은 우산처럼 되돌아와 거대한

  바다를 뒤덮는 해일처럼

  한 순간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어둠의 빛을 잠식하는 도심의 거리

  인쇄소 골목에 있는 세시봉 라이브에서 통기타소리와 함께

  아주 오래 전에 듣던 정훈희의 안개가 피어 오른다

  나는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데 M을 떠날 수가 없다

  무단 횡단을 하다 차에 치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들고양이나

  도심을 떠돌다 소리 없이 죽어간 바람처럼 나의 영혼은

  M의 주변을 떠돈다

 

  소설 속을 떠도는 M

  순수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짜릿짜릿한 에테르 속에서

  순수하게 거듭나고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

  용기와 아름다움을 얻는다

  나 또한 M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M이 존재할 때 내가 존재한다

  그가 곧 나의 에테르, 나의 시이기 때문이다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 상처가 있는데 아프지 않다

  존재가 치유되어 간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죽은 자와 산자의 경계에서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영혼의 그림자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빛과 어둠 속을 공존하며 그의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돌계단을 밝고 내려가는 바람, 물소리를 따라 지금은 바퀴를 굴리지 못하는 추억 속의 자전거, 그 자전거를 타고 드넓은 신록의 들판을 달린다 천막처럼 떠들어대는 여학생들의 수다와 모딜리니아 미용실 골목을 벗어나 석양이 붉게 물드는 바다에서 나는 M의 손을 잡고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우주 정거장에서 만날 약속을 한다 엄지손가락으로 도장도 찍고 복사도 한다

 

  M은 나의 뮤즈,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에테르

  나는 M과 함께 잠이 든다

 

시집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지혜사랑, 2011) 중에서

 

 


 

 

이현채 시인 / 고독 수집가

 

 

  어리석은 자들은 고민한다 어째서

  별은 떨어지지 않는가

 

  별은 달아나지도 떨어지지도 않아

  이상적인 경로를 따라 동서로 움직이며

  원을 그리는 별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지

  아무리 주사위를 던져 봐도

  마찬가지, 결과는 똑같아

 

  바람이 계속 불면 새들은 날다가 길을 잃지

  도시엔 사람이 다 죽어가고

  죽은 사람은 사막에 살다가 때가 되면

  낙타처럼 고개를 들고

  구릉으로 몰려들지

  화분을 뒤집어 쓴 신을 섬기며

  오만을 떨다가 구경거리로 처형되거나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지

  우주는 거대한 궤짝처럼 생겼지

  하늘은 뚜껑이고

 

  그 한복판에 딱 붙은 별

  바로 내가 까치발로 서 있는 이곳이야

  죽음의 공포로 도시 전체는 엉망이 되었지

  불결한 피로 손을 더럽히고

  피부를 도려내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눈의 착각에 빠져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는 채

  도서관의 세라피움에서

  금성과 화성이 물병자리에 걸리는 것을 본다면

  축배를 들겠지

  별은 절대 떨어지지 않아

  원으로 움직이는 한

 

  어리석은 자들은 고민한다 어째서 별은

  떨어지지 않는가

 

시집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지혜사랑, 2011) 중에서

 

 


 

이현채 시인

당진에서 출생. 2008년 《창작21》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지혜사랑, 2011)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