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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나금숙 시인 / 당신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8.

*당신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 3인의, 그 시절의 시

 

 

적전(敵前)의 저들이 그림자를 너무 멀리 달아나게 했다면 밝혀둔 불이 가진 문 뒤편의 가족력은 얼마나 복잡한 우주인 채로 물체인 쪽만 가볍겠니? 나란히 놓은 두 무릎이 천사와 악마 모두에게 어떻게 굴었는가를 얘기 나누면 차츰 흘리고 나서야 나는 비겁해졌다. 집이 어떻게 구부러지고 있는지를 잘 아니까. 잘 씻은 쌀을 넣어 꿰맨 여자애 이야기를 들려주고 떠나왔으니까, 조용히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무나의 좋은 씨받이가 되어 있었다. 물과 칼을 합쳐 안개를 만들고 그 속에서 젖고 베이며 놀았다. 저녁으로, 라는 지혜를 간절히 믿었다. 복잡해지는 순간 흐르는 단순한 빛 속엔 절구 방망이, 물 빨래판, 냄비 꼭지 같은 태몽의 물체들이 올려져 있었다고, 애를 낳고 동생이 말했다.

 

ㅡ「태몽의 물체」, 조연호

 

 

환하게 불 밝혀진 문 뒤편, 복잡한 가족력을 통해 조연호는 세계에 접근하고 있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정신보다는 보이는 물체 쪽이 훨씬 가볍다. 그렇듯이 거개의 가족력은 보이지 않는 쪽이 훨씬 무겁다. 그 무거움은 무릎을 나란히 하는 기도의 자세를 자주 연출하고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가게 한다. 그렇게 왕래하다 보면 사람들은 사물에 대해 분수를 알게 되고 무모함을 버리고 비겁해진다. 대부분의 집, 즉 가계는 뼈대가 온전치 못해서 날이 갈수록 구부러지고 틀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구성원 중에는 먹고 살기 위해 잘 씻어 꿰맨 희생제물이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여자애, 조용히 곁에 있는 아무나의 씨받이는 ‘우주’인 집의 먹잇감이자 제사장이다. 물과 칼을 합쳐 안개를 만들고 젖고 베이는 삶의 현장은 저녁이 되어야 부활의 아침이 온다. 복잡한 이승에서 단순한 한줄기 빛이 탄생을 가져오는데 그 매개는 의외로 야구 방망이, 빨래판, 냄비꼭지 같은 범속한 것들이다. 밤새 싸운 도깨비가 아침에 보면 다 닳은 빗자루몽둥이듯 말이다. 이 범속한 것들을 통해 시를 낳는 여자애와 여동생은 시인의 창조본능이다.

 

 

순록들 내 입술 위를 걸어간다

혀로 발아래 얼음을 핥으며 간다

 

얼음 밑에 거꾸로 떠올라 있는

누군가의 희멀건 발바닥을 핥는다

 

순록은 내 입술을 뜯어 먹는다 차가운 나무뿌리를,

얼어 죽은 어린 순록의 뿔에서 돋아난

푸른 잎사귀들을 뜯어 먹는다

 

귀가 뜨거워지면 발아래 얼음이 녹아내리므로

순록은 누군가 누웠던 내 입술 위 나뭇잎에서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

 

순록은 내 입술 위에 앉아

수평선이 혀에 얼어붙을 때까지

서러운 혼잣말을 한다

 

나는 눈들의 지느러미에서 태어났어요

나는 설국(雪國)으로 끌려가서 낙관주의자들의

 

부드러운 암각(暗角)이 되기도 했어요

속눈썹을 몰래 얼음 위로

한 마리씩 떨어뜨리며

되돌아오는 길을 표시했지요

 

행렬 속에서 길을 잃고 얼음 위에 잠들어버린 순록은,

봄이 되면 내 입술 위의 따뜻한 얼음이 된다

살얼음 아래로 녹아 내려 내 입술이 된다

 

서서 죽은, 순록의 귓속에서 새벽초원이 흔들린다

 

산 채로 땅 구덩이에 던져진,

수천 마리 매장된 소牛들의 울음을 들으려고

 

내 입술 위의 벼랑 끝에서

순록들은 시퍼렇게 아슬아슬하다

 

ㅡ 「내 입술 위의 눈썹들」,김경주

 

 

순록과 입술이 일치하는 것은 입술 순 자뿐이다. 그럼에도 이 시에서 입술은 얼음, 나무뿌리로 변주된다. 고매한 사슴의 뿔을 연상시키는 나무뿌리 말이다. 이 시에서 순록과 입술은 하나다. 동의어다. 순록은 순수를 지향하는 시인의 영혼, 누군가 앉았던 얼음이나 얼음 나뭇가지에서는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 오로지 너는 내 운명, 같은 사랑을 원한다. 얼음 위에 댓잎자리를 모아 얼어죽을 망정 사랑을 나누기 원하는 불 같은 정념은, 얼음을 녹아내리게 하므로, 얼음 위의 사랑을 말하는 시인은 단 한번 죽음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순록은 사실 설국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영혼을 거기로 내모는 것이다. 낙관주의자, 낭만주의자로 끝날 수 없는 전쟁터를 알기 때문에 시인은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 속눈썹으로 자기 정체성을 심어놓고 가는 것이다. 낙관주의자들의 안이한 행렬 속에서 길을 잃은 시인의 영혼은 결국 시인의 언어로 살아남고자 한다. 산채로 땅 구덩이에 던져진 수천마리 소 울음은 지금 매장당하는 세상이 온몸으로 내는 울음소리, 그 울음은 시인의 입술을 통해 시퍼렇다. 입술 위의 벼랑 끝에서 시퍼렇게 아슬아슬하다. 살아 있다.

 

 

우린 이제 아름다운 사냥감을 돌에 새기지 않는다

부족의 창에 걸려든 작은 짐승

마지막 숨이 고요한 지층을 흔들 때

꽃잎 같은 긴 임종을 불 속으로 내던졌다

짐승들이 인간을 사냥하던 그때

저들도 심장이 놓인 돌 앞에 둘러 앉아 노래를 불렀을까

어금니에서 귀로 건너가던 낯선 종(種)의 울음소리

살생의 분홍빛이 빠져나갈 때까지 바닥을 긁었을까

동굴처럼 깊은 눈을 껌벅이면

원시의 시간을 벗겨낸 뺨과 입술

고독한 팔다리를 가진 족속에 대한 그리움으로

심장 반쪽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을까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엿보는 슬픔 하나씩을 지니게 된 걸까

낄낄거리며 뜯어먹는 이 살점의 주인은

어쩌면 내 까마득한 날의 사랑일지도 몰라

붉은 영역 너머로 꽃을 던지는 저녁

비린 눈썹 한 쌍이 건너왔다

 

ㅡ 사냥, 그리고 일곱 번째 눈썹

 

-투화(投花) , 유미애

 

유미애 시인이 집착하는 시어 중에 손톱도 있지만 눈썹도 자주 눈에 띈다. 그냥 눈썹도 아니고 일곱 번째 눈썹? 완성의 숫자인 일곱 번째 눈썹은 일곱 번째 완전한 연인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사냥감을 돌에 새기는 기념비적인 행위는 현실에서 의미가 없다. 먹잇감을 포획하고 그들의 분홍 살점을 낄낄거리며 어금니로 뜯는 행위가 훨씬 동물적이고 실제적이다. 우리는 심장이 놓인 돌 앞에서 이 먹잇감을 어금니에서 귀로 듣는다. 대상을 갈기갈기 찢는 말의 성찬을 먼저 즐긴다. 낯선 종(種) 의 울음소리를,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의 바닥을 긁는 소리를 온몸으로 흡입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엿보며 흘깃거린다. 그러나, 낯선 종(種)의 사냥도, 육식도 치유는 아니어서 마지막 살점을 꽃처럼 던지는 저녁, 다시 궁금한 식욕을 자극하는 비린 한쌍이 다가온다. 그것은 일곱 번째 눈썹일까? 완전한 사랑일까? 핏빛이 붉은 영역에서 여전히 살육하고 먹히면서 우리는 그래도 갈망한다, 완전한 사랑.

 

* 김경주의 시에서 인용

 

 


 

나금숙(시인,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전남 나주에서 출생. 200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 나무 아래로』(새로운사람들, 2003)과 『레일라 바래다주기』(시산맥사, 2010)가 있음. 2017 서울문예창작지원금 수혜.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