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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함태숙 시인 / 검은 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6. 27.

함태숙 시인 / 검은 새

 

 

  해발 사천 미터, 정상에서 본 까마귀 한 마리

  날개 칠적마다 석탄가루 떨어진다

  무너진 갱도 사방 한 쪽을 밀어

  수직으로 깎여나간 북벽

  인간이 인간에게 합당치 못했던 일들이

  제각기 광물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침목 위, 소금결정처럼 내려앉은 만년설

  기억은 지표를 따라 이동하고

  머리 위, 전혀 다른 시간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그 어느 막다른 곳으로부터 너는 와서

  활강하는가? 비유여

  각국에서 던진 탄성과 과자부스러기

  관광사진 속에 너는 무수히 찍혀 나오지만

  그 검은 심장은 한 번도 꺼내진 적 없다

 

  자유란 오로지 죽은 육체에만 매장되었다는 듯

  날개란 단연코 제가 제 바닥을 치고 오른 선언

 

  융프라우 산 정상을 검은 새 한 마리가 제압한다

  카악카악 울 때마다, 각혈하는 전망이 있다

 

격월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1년 11월~12월호 발표

 

 


 

 

함태숙 시인 / 해바라기

 

 

  당신은 따스하고 또

  나를 키우는 것이어서요

  이 빛과 아름다움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허락된 이름을

  내게 선사했구요

  또 나날이 나를

  꿈꾸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타는 볕을

  총탄처럼 받아내며

  지독한 참상으로 섰는 것은

  오히려 저의 자랑이구요

  걷잡을 수 없는 것이

  운명을 이끌도록 버려두는 것은

  제게 도달할 곳이 있어서 입니다

  보세요, 새카맣게 타들어

  익어가는 것들을요

  어쩌면 경계를 넘은 자들의 최후처럼

  무거운 고개를 떨구고 있지만요

  육체가 타 올라, 영혼이 익는 거라면

  지금 존재의 뜨거움에 헐떡이는

  어떤 사람들도

  저와 당신의 관계로부터 무관하지 않겠지요

  무심코, 그 익은 씨앗을 따 먹는데도

  그들은 당당히

  자신의 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깥을 태우지 않고

  속으로 익어 갔던 것들을요

  그래요, 당신은 격렬하고 또

  나를 파탄 낸 것이지만요

  이 통증과 이 사랑은

  당신에게로 닿았던, 저의 전 육체를

  최초의 것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품은 그 방식대로요

  여기, 두 손 가득, 잘 익은

  해바라기 씨가 있습니다.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9년 11월~12월호 발표

 

 


 

함태숙 시인

1969년 강릉에서 출생. 중앙대 심리학과, 同 대학원 임상심리학 전공. 2002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