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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숙 시인 / 검은 새
해발 사천 미터, 정상에서 본 까마귀 한 마리 날개 칠적마다 석탄가루 떨어진다 무너진 갱도 사방 한 쪽을 밀어 수직으로 깎여나간 북벽 인간이 인간에게 합당치 못했던 일들이 제각기 광물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침목 위, 소금결정처럼 내려앉은 만년설 기억은 지표를 따라 이동하고 머리 위, 전혀 다른 시간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그 어느 막다른 곳으로부터 너는 와서 활강하는가? 비유여 각국에서 던진 탄성과 과자부스러기 관광사진 속에 너는 무수히 찍혀 나오지만 그 검은 심장은 한 번도 꺼내진 적 없다
자유란 오로지 죽은 육체에만 매장되었다는 듯 날개란 단연코 제가 제 바닥을 치고 오른 선언
융프라우 산 정상을 검은 새 한 마리가 제압한다 카악카악 울 때마다, 각혈하는 전망이 있다
격월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1년 11월~12월호 발표
함태숙 시인 / 해바라기
당신은 따스하고 또 나를 키우는 것이어서요 이 빛과 아름다움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허락된 이름을 내게 선사했구요 또 나날이 나를 꿈꾸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타는 볕을 총탄처럼 받아내며 지독한 참상으로 섰는 것은 오히려 저의 자랑이구요 걷잡을 수 없는 것이 운명을 이끌도록 버려두는 것은 제게 도달할 곳이 있어서 입니다 보세요, 새카맣게 타들어 익어가는 것들을요 어쩌면 경계를 넘은 자들의 최후처럼 무거운 고개를 떨구고 있지만요 육체가 타 올라, 영혼이 익는 거라면 지금 존재의 뜨거움에 헐떡이는 어떤 사람들도 저와 당신의 관계로부터 무관하지 않겠지요 무심코, 그 익은 씨앗을 따 먹는데도 그들은 당당히 자신의 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깥을 태우지 않고 속으로 익어 갔던 것들을요 그래요, 당신은 격렬하고 또 나를 파탄 낸 것이지만요 이 통증과 이 사랑은 당신에게로 닿았던, 저의 전 육체를 최초의 것으로 돌려 놓았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입증되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품은 그 방식대로요 여기, 두 손 가득, 잘 익은 해바라기 씨가 있습니다.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9년 11월~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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