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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경 시인 / 잔혹한 연애사
치유하지 않는 상처 틈 사이로 귀신이 입주한다
노숙하는 혼(魂), 주파수에 감전된 여자 심장에는 두 개의 텔레파시가 접속되고, 존재의 벨이 울릴 때마다 여자는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일상으로는 열리지 않는 궁륭, 영혼이 가진 중량 2그램도 없는 귀신과의 동거를 한다 일상을 철컥 채우는 자동잠금장치에 장대가 부르르 떨리고, 인간이 가진 감정 한 방울까지 귀신에게 준 여자의 표정은 여자가 아닌 듯 낯설다
귀신을 공수하는 여자 몸에서 쏟아지는 혼과의 연애 조건
존재의 결합 형태: 일부다처제(남녀노소, 연령, 숫자 제한 없음) 주소지: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 사이 신혼집: 여자의 몸 새 직업: 시, 춤, 무가(巫歌)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종합예술인 결혼예물: 저승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디지털 심미안
공수를 그치며 여자가 말하길 닫는 것이 여는 것이고, 종말이 있어야 천지가 개벽하지만 문어 빨판처럼 내 몸에 붙은 귀신 네가 스토커지 사랑이냐고 한다 온갖 귀신 입이 되어 지껄이는 내 팔자가, 숨도 쉬지 않는 불도화가 왜 꽃이냐고 반문한다
중량이 사라진 종이무구 세간살이에 들앉은 인간의 집착 귀신 씻나락 품에 안은 여자가 점괘를 얼레고 있다
계간 『시와 사상』 2009년 봄호 발표
정진경 시인 / 비아리스토텔레스식 관람법
회전문 너머 선 검표원들 검열하는 자세가 당당해 보이네요 내 감정은 주머니에 넣고 입장을 할까요? 소외의 거리에서 발생한 어떤 힘이 표정을 바꾸라고 재촉을 하네요
한 시대가 기획한 가면과 그 진실을 모른 척 하는 연기 중 어느 것이 더 리얼할까요? 음흉한 연출자 웃음이 내게 최면을 거네요 감정을 훔치고 길들이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식 관람법이라면 감정을 통제하고 사건을 비판하게 하는 것은 비아리스토텔레스식 관람법이지요 꿈의 제조공장이 만들어낸 검열을 즐길 것인지 환상을 버리고, 몽타쥬된 시간을 택할 것인지 말하라 하는군요 하지만 나는 No라고, 무대가 잠시 암전되는 동안 당신이 Yes라고 입력한 사건들을 역설적 화법으로 되묻곤 하지요 내 속엔 아주 여유롭게 비틀린 달팽이가 한 마리 살아요 느린 달팽이 몸에도 자유를 갈망하는 혼이 있다는 걸 인식의 촉각에 난 더듬이를 당신은 검열하지 못했군요
방치된 진실을 편집할 수 있는 기법 비아리스토텔레스식 연극을 즐길 수 있는 티켓 한 장만 주세요
계간 『시인시각』 200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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