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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시인 / 사람을 잊은 집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므로 꽃을 더 잘 볼 수 있다. 구름에게 은밀히 말을 걸 수 있다.
바람에게 대여료를 받지 않고도 넉넉히 빌려줄 수 있는 어둠. 고요가 친구라는 것도 너무 좋다. 더 이상 자물쇠가 필요 없으므로 느닷없는 바람의 방문이 낯설지 않다.
새로운 길은 지워지고 어디론가 오래된 길이 꿈틀거리며 무성히 자라 올라 오래 지워져 있던 수직의 길을 복원한다. 길이 두근거린다.
수천 년 전의 너를 만날 수 있으므로 너의 촉촉한 앙가슴이 깃들던 토굴의 쌔끈거리던 숨소리가 자라 송이꽃 밀어올리던 흙 내음도 더 잘 맡을 수 있다.
그러니 누구도 나를 버리지 못한다. 나는 열려있으므로 잡초를 말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나를 조금씩 헐어 벌레들의 방언을 완성시킬 수 있다. 벌레들은 수평의 말을 수직으로 꿈틀거린다.
그것은 일종의 춤이다. 꽃들의 몸속에 숨어있던 오래된 리듬이다. 꽃을 더 잘 볼 수 있으므로 이제 나는 나를 연주할 수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16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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