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순 시인 / 날멸치를 고추장에 푹 찍다가
한 끼 밥상이 비릿해집니다.
엄마네 고추장독이 태풍 솔릭에 와락 쏟아져내리지 않았는지 누이가 멸치똥을 발라내는데 동생의 식성이 딸려 나와 수북하게 대가리들이 들이대며 밥상머리에서도 은빛으로 빛나는 비늘입니다만 퉁퉁 분 누른밥 한 숟가락 무는데 까무룩 대학시절 남매가 함께 간 영화관이 올라옵니다.
디어헌터의 장면장면이 누이의 졸음으로 자막이 흐릿해졌고 시험끝이라는 변명이 무색하게도 영화보며 조는 게 백 퍼센트 확률에 가까운 상습범의 누이라는 게 목이 메입니다.
가부장적 집안의 장남이라는 굴레는 딸 셋으로 단산을 하며 벗어 던졌지만 올해 막내 딸 소영이가 수능을 치루고 대학생이 되어 부녀지간 나란히 영화관에 가는 상상이 멸치 뼛속까지 고추장 짠내로 쩔어 달달한 맛입니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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