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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정민나 시인 / 소청도, 너의 이름은 스트로마톨라이트*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8.

정민나 시인 / 소청도, 너의 이름은 스트로마톨라이트*

 

 

너는 걸어가고 있다.

 

발치에 어린 피조개와

연한 물미역을 거느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파도가 할퀴는 무릎을 세우고

오르고 미끄러지며

달의 모서리를 딛는다.

 

너의 몸은 태고의 비밀을 잉태했다.

그것을 노리는 손길을 벗어나

자꾸만 돌아가는 길.

 

파도는 위로 솟구치고

태양은 뜨거운 정수리를 누른다

목이 마르면 웅덩이 빗물을 받아 마시고

 

뾰족한 시간의 그림자를 끌어당기며

너의 몸은

아직도 어린 나이테를 만든다.

 

바위를 타고 넘는

꽃들은 재빨리 씨방을 만들어

자신의 족적을 보관하는데

 

너의 뱃속에 든 생명은 어디서 출산해야 안전할까.

허름하고 외진 곳에서 붙잡혀

끌려간 너의 종족이 떠오른다.

 

섬을 섬으로 놔두지 않으면

섬 안에 사는

아름다운 새와 물고기가 죽는다.

 

수 억 년 여기까지 걸어 왔는데

섬을 닮은 너의 얼굴은

분홍 접시조개.

 

기둥, 돔, 원뿔 모양으로 팔려가는구나.

광합성을 다해 가는구나.

산소 방울을 통통통 내 보내며

 

퇴적의 가장자리를

밟고 있는

남세균 한 마리.

 

모래입자들과 층층히

낭떠러지 끝에서 생포 되는구나.

 

* 우리나라 소청도에서 보존되고 있는 10억 전 미생물의 화석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정민나 시인

1960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 1998년 《현대시학》에 〈길이 된 섬〉외 4편이 추천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꿈꾸는 애벌레』(배꼽마당, 2003)가 있음.  현재 〈현대시학회〉, 〈인천 작가회의〉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