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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명 시인 / 동백나팔수

by 파스칼바이런 2019. 7. 28.

김지명 시인 / 동백나팔수

 

 

맞춤이 있다

부침을 솎아내는 맞흥정이 있다

꿈속을 다녀온 잠이

빨강 블럭 밖을 걸어간 성마름의 자리

 

동백은 더운 가슴을 오려 동박새를 잊는 습속이 있다

 

거미가 가지에 손가락을 걸고 실뜨기를 하는 동안

바람이 대책 없이 풍등처럼 엉덩이를 쳐올리는 동안

동백은 난전처럼 난간처럼 피어

나를 기념해야하는데

심장이 고장 나면 안 되는데

사랑해 계단 여섯 번째 동백이 그만

 

땅에 내려올 줄 몰라, 윗전들의 놀이터에서 눈치껏 설레발 비행 하는, 그러다 밥그릇이 위험하면 떼로 몰려가 항전을 즐기는 숲속 수다쟁이, 직박구리와 살림을 차린

 

최후의 만찬은 움푹 패인 홈이었다

홈은 미끌, 떨어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린 열병이 죽고 어린 구원이 죽은

선택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노을이 떠난 동백의 빈 무릎에 누우면

콜셋을 벗어던진 슬픔은 목이 긴 악기가 필요할 때

한번 불어 봐도 돼?

나를 기념하고 싶어

먼 지평선을 잃고 동백 지평에 닿았다

오늘의 운세를 타고 노는

맞흥정 나팔은

언제나 옳았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5월호 발표

 

 


 

김지명 시인

서울에서 출생.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졸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수료. 2013년 《매일신문》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쇼펜하우어 필경사』(천년의시작, 2015)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