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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구효경 시인 / 파약

by 파스칼바이런 2019. 8. 2.

구효경 시인 / 파약

 

 

      내일을 몰라도 내일 다시 모일

      아이들은 놀이터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하얀 털을 가진 길 고양이 울음소리만 바람을 뛰어넘네.

      노을을 주렁주렁 단 하늘에서 가는 비가 내리네.

      짧은 새끼손가락을 엄지로 어루만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손가락들에만 남아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입에서 입으로 옮아온 것이 아니었다.

      다만 체온으로 각인하고 체온으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때늦은 파혼을 말하고 돌아선 신부의 면사포처럼

      슬프고 보드라운 물결 빛 바람이 분다.

       

      나무 이파리 하나를 떼어다 찻잔에 넣는다.

      잎 끝에 남은 나무의 기억,

      몸 안에서 약동하던 물과 공기와 햇볕

      모든 것의 섞임과 흘림을 어루만지며 자라던 시절

      꽃 틔우는 결말은 상투적인 약속이었지만

      꺾인 결실도 예상 못 할 파약은 아니었네.

       

      때로는 물방개와 소금쟁이가 등에서 꽃을 틔우고

      안개와 구름이 타버린 불덩어리를 낳으리라는

      그런 약속도 있었던 것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8년 10월호 발표

 

 


 

구효경 시인

1987년 전남 화순에서 출생. 전남과학대학 화훼원예과 중퇴. 2014년 웹진 《시인광장》을 통해 등단. 현재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