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명 시인 /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왜가리는 줄넘기다. 왜가리는 구덩이다. 왜가리는 목구멍이다. 왜가리는 납치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테이블은 하나다. 테이블은 둘이다. 테이블은 셋이다. 테이블은 숲 속에 놓여 있다.
손을 들고 숲이 출발한다. 테이블은 없다.
테이블 위로 왜가리는 도착한다. 걸어 다니는 테이블 위로 왜가리는 뛰어 든다.
테이블은 부서진다. 숲이 출발한다.
왜가리는 하나다. 왜가리는 둘이다. 왜가리는 셋이다. 왜가리는 없다.
왜가리는 숲 속에서 왜가리 놀이를 한다.
시집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세계사, 1998) 중에서
이수명 시인 /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시집 『언제나 너무 많은 비』(문학과지성사,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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