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정채원 시인 / 머리에서 가슴 사이

by 파스칼바이런 2019. 5. 9.

정채원 시인 / 머리에서 가슴 사이

 

 

단두대에서 잘려나간 뒤에도

머리통의 두 눈은

6초간 껌벅였다는데

 

귀는 가슴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심장이 멎은 뒤에도 한동안

가족의 울음소리를 듣다 간다는데

 

퍼덕이는 가슴을 잠재우려

불타는 머리통을 두 팔로 감싸고 가는 이가 있다.

 

가슴보다 커지는 구멍을 몸밖에 버리려다

눈만 한동안 껌벅이다 떠난 사람이 있다.

 

누가 그 눈꺼풀 가만히 쓸어내릴까

 

심장이 멎은 뒤에도 입술은 두고두고

잘려나간 시간을 껌벅이며 되뇔 것이다.

 

길이 식은 뒤에도 길의 기억은

문 닫은 카페 앞에 발길을 멈추고

슬픔의 맥박이 멈춘 뒤에도

귓속엔 먹먹한 돌멩이가 굴러다니고

 

눈 감아도 움푹 눈 뜨고 있는 어제의 웅덩이에 빠져

하늘은 깊어서 캄캄한가

오늘은 캄캄해서 아름다운가

 

머리통 속 흑백의 불덩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지르며

시간의 목에 칼금을 긋는 동안

 

가슴에 갇혀 퍼덕이는 날개가 있다.

 

월간 『시인동네』 2019년 3월호 발표

 

 


 

정채원 시인

1951년 서울에서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1996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나의 키로 건너는 강』(시와시학사, 2002)과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민음사, 2008), 『일교차로 만든 집』(천년의시작, 2014)이 있음. 2018년 제2회 한유성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