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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겸 시인 / 나의 시 나의 시론 계단 앞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階前梧葉已秋聲)
「기상예보」
하늘 흐리고 안개 낀 숲엔 우울이 내려와 있음 구름에 갇힌 빛살들 허공에 날개 자국울 긋고 가는 멧새 모두 표정을 남기고 있지 아니함 길 잃은 고아처럼 서서 플라타너스는 적막을 날리고 풀씨로 흩어진 슬픔은 북북동에서 북북서로 방향을 바꿈 폐부로 흘러드는 저기압의 음모 백마일 밖 한랭전선은 풀잎들의 잠 뿌리 뽑을 폭풍을 몰고 오는 중임
지금은 모든 사랑이 위험함 외투를 걸친 우리의 꿈 방독면을 쓴 채 큰길로만 다님 골목마다 비수를 품고 매복한 어둠 시간들의 휘파람 대꼬챙이로 눈 찔러 오는 저녁 지금은 모든 생각이 위험함 문 닫고 굳게 빗장을 지른 거리의 불빛들 창 틈을 엿보는 소문과 함께 얼굴 까맣게 죽는 지금은 모든 그리움이 위험함
찬비가 내림 우산을 들고 사람들은 사람을 비껴감 낯선 총을 멘 겨울의 파수병이 요소요소 서있고 바이칼 호수를 지나 시베리아 삼림을 막 빠져나온 러시아의 절망도 보임 공중엔 바람의 채찍 가득해 두려움에 야윈 나무들의 어깨 더욱 가늘고 겨울잠에 젖어 봄날을 꿈꾸는 개나리 새눈만이 소롯이 숨결에 싸여 한 개피 성냥으로 남겨 논 최후의 불꽃임
1983 서울신문 데뷔 시「기상 예보」는 아마도 공식 시인으로서의 내 시 경향을 본격적으로 규정한 시다. 모더니즘 이미지들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였으니. 이 시는 80년대 정치 사회적 현실 고통과 잘 풀리지 않은 개인사의 우울한 분위기를 겹친 이중(ambiguity)정서를 염두에 두고 썼다.
외연은 개인 서정시이지만 내포는 전두환 정권의 정치현실을 암시하는 알레고리로 구성했는데 긴급조치와 언론검열 상황에서 쁘띠 부르조아의 심약한 서생이 할 수 있는 한계. 정한모선생님과 황금찬 선생님이 심사를 보셨는데 모더니즘 시와 이론을 추구하셨던 정한모 선생님 눈에 든 것 같다. 같은 해 한국일보 죄종심에서 떨어진「비 내리는 숲에서 연주한 현악사중주」는 서정주 김남조 선생님이 심사를 보셨다. 내 시는 모더니즘의 서정시 였고 당선시는 단순 리듬에 의존한 서정시였다. 내가 보기에는 시적 내공이 떨어지는 작품이었는데도 당선이 된 것은 심사자의 취향이거나 신문사 문화부끼리 미리 정보를 공유해서 내가 서울신문이 확정되었으므로 양보 당했을 수도 있다. 이근배 선생님이나 오태환 시인처럼 한해 2관왕이 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신춘시인과 시들은 부침이 심하다. 1983 한국일보 당선 시인이 그 후 시단에 작품 발표한 것을 별로 못 보았으니. 어쩌다 한 편이 등룡의 문을 열기도 하지만 그 후의 구만리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의 내공이 없으면 모두 추락한다. 2000년대 중반이던가? 현대시 행사에 갔더니 원구식 시인과 박주택 시인이 20년 후 살아남은 신춘시인들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10% 정도.
「기상 예보」는 당선 통보 전날, 꿈의 암시가 있었다. 내가 바닷가 탑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꿈이었는데 마지막에 기진맥진해서 간신히 꼭대기에 기어올라 누워서 쉬었다. 심사자들이 치열하게 논쟁했나보다. 나중에 심사평을 보니 결선에 오른 다른 작품의 안정된 구도와 능숙한 기교 대신 이미지를 밀도 있게 전개한 내 시이 신선함을 택했다고 적혀 있었다. 지금은 별거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동원한 이미지들이 참신했나보다. 시는 이렇게 써야 하나보다 생각해서 그 후로 나는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시들을 썼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 어렵다는 평들이 있었으나 내 독자들은 시인들과 전문독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일관되게 이미지를 강조한 시들을 썼다.
「비밀정원」
정원의 입구가 드러났다 입구 안에는 황금사과가 새벽의 어둠 속에서 빛났다 곧 사라질 신비를 향해 심장이 두근거렸고 발걸음을 멈춘 내 자아를 늙은 역사가 호기심으로 쳐다보았다 늙은 역사가 내 뒤를 따르면 비밀은 새 이름을 지울 것이 분명했다 정원의 입구를 그냥 지나쳤다
정원으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이정표를 들여다보았던가 정원에 대한 소문과 단서를 찾아 도서관과 밀렵꾼들의 시장을 돌아다닌 구두의 낡음은 무엇으로 보상할 것인가 왕궁과 부자들의 울타리에서부터 은자들의 고졸古拙한 뜰에 이르기까지 정원의 설계도를 들여다 본 눈의 피로는 또 얼마인가
그 정원의 입구가 내 앞에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나는 그 앞을 그냥 지나쳤다 황금사과에의 유혹이 여신을 향한 욕망처럼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입구는 안개처럼 왔다가 안개처럼 스러지는 새 이름이었는데 늙은 역사가 담배를 피우며 죽음의 냄새를 풍겼으므로 나는 눈을 내리 깔은 채 정원의 입구를 지나쳤다
그 정원의 아름다움 비늘구름이 노을을 받아 거대한 붕새의 날개로 불타오르는 변신이나 들판의 잡초였던 풀이 구절초의 꽃을 피워 올리는 둔갑의 순간에서 잠깐 동안 모습을 드러내었던 비밀정원을 놓쳐버렸다 지식과 경험의 울타리에서 문지기로 사는 늙은 역사의 간섭 때문에 내 심장이 황금사과처럼 빛이 나는 피안을 질투한 죽음의 훼방 때문에
돌아가신 정진규 선생님이 하루는 전화를 주셨다. 「비밀정원」의 ‘늙은 역사’를 당신의 시에서 인용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저야 영광이지요” 대답을 드리고 나서 왜 ‘늙은 역사’의 이미지가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중에 선생님이 발표한 시는 촌로村老가 수로부인에게 바쳤다는 「헌화가(献花歌)」를 배경으로 한 시였다. 「헌화가(献花歌)」는 강릉태수 순정공의 부인 수로부인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해변가 절벽의 꽃을 탐내자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암소를 몰던 노옹이 ‘나의 손길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겠습니다’라는 노래와 함께 꽃을 꺽어 바쳤다는 내용이다. 정진규 시인은 당신의 시에서 「헌화가(献花歌)」에서 일어난 사건을 ‘늙은 역사의 간섭’이 지혜와 용기로 작용해서 수로부인(시적 실체)을 향한 에로스의 시적인 발현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나는 「비밀정원」에서 ‘늙은 역사의 간섭’을 문명의 제도와 관습이 세계의 숨은 진리를 보려는 시인의 눈을 훼방한다는 알레고리로 썼다. 시의 기호는 같으나 시인의 해석과 수용과 창의력의 백터vector는 다르다. 시에서 텍스트(text)와 배경으로서의 콘텍스트(context)가 대한 수용이 제각각이기 때문.
「헌화가(献花歌)」는 그 자체로서 모호한 시여서 노옹과 수로부인과 암소와 꽃의 상징을 놓고 학자들의 수 없는 해석들이 있어 왔다.「비밀정원」도 어떤 의미로는 후학들이 다양한 평가와 해석을 하지 않을라나?. 수로부인의 ‘꽃’에 해당하는 ‘비밀정원’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내고 위해 내가 「비밀정원」을 썼던가?
제목은 프랜시스 버넷의 동화「비밀의 화원」을 참고했다. 인도에서 살던 영국인 소녀 메리 레녹스가 영국 요크셔의 귀족인 고모부 댁에서 살게 되면서 정원사 벤 할아버지와 친구 디콘의 도움을 받아서 버려진 화원을 아름다운 화원으로 만든다는 스토리. 이 스토리가 무의식에 남아 있었을까. 25년차 직장생활이 지겨워진 50대 초반, 정읍 내장산 자락에 위치한 방사선 연구소에 관리부장으로 발령받아 독신자 숙소 근처를 아침 저녁으로 산책했다. 화이트칼라 샐러리맨이 처음으로 인생의 해방감을 느끼며 블루베리가 심어진 시골 밭과 대봉과 호박꽃과 들꽃들이 있는 소롯 길들을 걸어 다녔다. 21세기 도연명이 되었던 기분이랄까? 고정 산책길에서 아침마다 만나는 늙은 노숙자가 어느 날 나에게 아는 체를 하는 순간, 시골 밭의 풍광 속으로 걸어가는 내 자신과 세계와의 먼 거리가 생기면서 위 시의 착상이 떠올랐다. 그날 늙은 노숙자가 아니었으면 ‘늙은 역사’의 이미지는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시도 순간의 인연과 연기緣起 속에 탄생하며 스스로의 운명이 있다.
과분하게도 정진규 선생은 후학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비밀정원」을 예로 인용하면서 교과서에 실려도 좋은 시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선생님이“내가 시는 잘 보지”멘트하면서 한 공치사이기에, 나를 칭찬한 건지 본인을 띄운 건지. 글쎄, 잘 모르겠다. 내가 죽은 후에 좀 유명해지면 그런 해프닝도 벌어 질려나. 국어 선생들이「비밀정원」의 주제와 상징을 놓고 ‘미래 한국의 영광된 모습’을 암시했다는 억지 춘향의 이데올로기 해석이 실린 참고서를 보며 강의 할려나?
「나비 침묵」
밤이 나에게 눈을 빌려주었다 밤은 눈이었으므로 밤의 숲으로 난 길로 멧돼지들이 바람처럼 다니는 길을 밤의 몸으로 흐르는 핏줄기처럼 보았다 밤이 스며든 수리부엉이의 날개와 늑대들의 발톱이 엑스레이사진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밤이 나에게 붕새의 눈을 빌려주었다 내가 용의 비늘 같은 날개를 펴고 한 밤의 숲을 날아가자 숲에서 기는 모든 벌레와 짐승들의 영혼이 흔들렸다 그들에게는 순간이 백년이었으리라 그들의 배고픔과 짝짓기를 위한 미로들이 거울처럼 드러나고 시간의 칼에 베어지는 운명을 공포가 읽어냈으므로 숲에서 기는 모든 벌레와 짐승들의 심장이 귀가 되었다 붕새의 눈앞에서 그들의 눈은 장님이었다 밤이 나에게 붕새의 날개를 빌려주었고 힘은 시간의 파도 위에서 사이렌의 노래처럼 영원을 유혹했다 숲을 폐허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이 나에게 있었고 밤은 벌레와 짐승들의 몸을 어둠으로 채워 박제하라고 속삭였다 별들이 모두 괴물처럼 눈을 부릅뜬 그 날, 밤이 나에게 선물한 힘의 키스를 잊지 못하리라 밤의 몸은 나를 사랑한 여신의 치마 아래처럼 캄캄했으나 내 영혼은 페니스처럼 발기해서 붕새의 눈처럼 밝아졌으므로
밤이 나에게 침묵의 소리를 듣게 했다 그 소리들은 바위로 굳어 산 계곡에 있거나 별이 되어 날아갔다 그 소리들은 가문비나무숲이었으며 흐르는 강물이었다 밤이 나에게 침묵의 소리를 들려주면서 세상이 태초의 말씀으로부터 빅뱅처럼 깨어났음을 상기시켰다 소리로부터 나온 시간이 태양과 달을 움직였고 구름 같은 힘이 어두운 하늘에 가득했으나 빛의 사랑을 얻지 못한 힘들은 심해 바다에서 잠을 잤다 밤이 내 귀를 트럼펫나팔처럼 길게 잡아당겨 침묵의 소리를 듣게 했다 깊은 꿈에 갇힌 소리들은 오래된 사원의 기둥으로 서 있거나 봉인한 용의 몸 같은 산맥으로 누워있었다 과거에 그들은 백성의 기도나 용암으로 살아있었다 시간이 늙으면서 소리는 무덤 같은 휴식으로 돌아갔다 시체로 누운 침묵을 파리가 날아와 구더기 왕국을 만들었고 세균들이 번식하면서 썩는 냄새가 밤의 배꼽에서 진동했다 심원한 생각에 잠겨 밤과의 산책을 벌판으로 나갔는데 침묵이 빛이 물든 소리로 깨어나는 새벽이 왔다 눈 속으로 무지개처럼 살아난 하늘과 땅의 풍경이 흘러 들었고 밀회가 끝난 여신처럼 밤은 지혜로운 미소를 짓고 물러났다 내 배고픈 정신이 비로소 깨달았다 현실이란 고치를 뚫고 나온 커다란 나비 침묵임을 내 몸은 대낮을 날아다니는 나비였으나 곧 밤의 영혼과 재회할 운명임을
이 시도 현실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환상에서 가져왔다. 밤이 상징하는 우주의 어두운 에너지와 그 에너지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죽어가는 미로와 시간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었다. 시적 정서의 에너지가 매우 고양된 상태에서 쓰여진 「나비 침묵」은 밤이라는 정서의 물살이 세차게 흘러갔기에 여러 가지 다양한 이미지들을 시의 부력에 올려 놓을 수 있었다. 정서의 물살이 빠르지 않았더라면 시의 이미지들은 모두 가라앉아 지리멸멸한 시가 되었을 것이지만. 다행히 내가 의도하는 대로 한 방향으로 시의 정서적 비약이 흘러갔다.
뇌 과학자들이 재미있는 결과를 밝혀냈다. 원숭이가 땅콩을 집어 먹는 순간에 이 동작을 보던 다른 원숭이의 뇌도 동일한 흥분이 일어나는 뉴론 집단을 발견한 것. 영화나 연극을 보는 관객이 주인공이 되서 스토리에 몰입하는 내부 가상 시뮬레이션을 과학자들은 미러링(Mirroring)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인간의 타인에 대한 행동모방 능력은 진화상 5만년 전 쯤에 폭발적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집단생활이 중요해지면서 모방능력이 문화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됐다는 스토리. 이 능력이 손상된 자폐아와 정신분열자들은 심각한 사회부적응장애를 나타낸다고 한다.
모든 예술은 감정이입을 기반으로 해서 성립한다. 작가의 정서(타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없으면 그 작품의 내용은 전달이 될 수 없다. 칼 포퍼는 새로운 이해를 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으로 ‘감정이입’을 생각했다. ‘감정이입’이란 ‘대상 속으로 들어가 대상의 일부가 되는 것인데 ‘감정이입’의 가장 친숙한 경우가 인간의 ‘사랑’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 일부가 되는 것처럼 느낀다. 플라톤은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는 에로스와 정신적으로 한 몸이 되는 아가페 형식을 구분했지만 시는 어떤 형식으로든 ‘시(Poesie)’와 사랑에 빠지지 않고는 쓸 수가 없다. 무용가 이사도라 던칸은 무용이 사람의 몸속에 감정이입 기제를 자극하여 ‘관객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싶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시도 마찬가지. 시란 시를 읽은 독자가 시인이 느낀 포에지(poesie)를 스스로 시인이 되어 체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이 시를 읽고 밤의 환상이 부여한 이미지들의 스트림을 따라갔을까? 밤과 낮, 음과 양, 침묵과 소리의 원초적 시간, 가이아(Gaia) 여신이 펼친 히에로파니(hierophany)의 시간을 체험했을까?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시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시 창작의 요체인데 감정이입이 실패했다면 시인의 시적 무능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기호의 고고학」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었다’는 문장처럼 말씀과 사물이 한 몸이었던 행복한 시대의 말이 있었다
에덴으로부터 지상으로 내던져진 말들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담의 몸처럼 썩고 부서지는 낙엽의 운명이 되었다
말들이 인간의 의식에서 태어났으나 대양으로 흐르는 시간의 강에 뜬 물살의 거품이었다 말들은 심연으로부터 솟구친 바위 같은 세계 풍경에 걸리며 인간의식에 굴곡과 무늬를 만들어 냈다
아라베스크 문양의 회교사원처럼 사각형과 원이 중첩된 티벳만다라처럼 말과 말이 결승문자처럼 얽힌 만화경이 문명이었다 말의 역사 속에서 상징의 피라미드, 은유의 크레타미궁, 이미지의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졌다가 무너졌다
인간의 생각들이 말의 요람에서 태어나 말들의 무덤에서 죽었다 제도와 법률과 화폐와 인간이 프로그램한 모든 도구들이 부장품처럼 묻혔다 인류의 의식은 흙의 잠속에서 도서관의 책들과 박물관의 미이라 같은 말의 꿈을 꾼다 죽은 생각들이 진시황의 병마총처럼 묻혀 드라큐라의 수혈 같은 재생의 시간을 갈구한다 나는 독자들을 비경秘境으로 안내하는 헤르메스처럼 지도와 랜턴을 준비해서 캄캄한 흙의 시간으로 내려가 문명의 모든 기억을 들여다 본다
언어를 기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도들이 있다. 기호학은 언어를 과학적 경험주의나 논리실증의 관점에서 언어의 규칙과 체계를 연구한다. 인간은 문자를 포함한 상징(symbol)과 도상(icon), 지표(index)로써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으며, 서로 의사를 소통한다. 여기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 내는 행위를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 하고, 의미 작용과 기호를 통해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는 행위를 커뮤니케이션이라 하며, 이 둘을 합하여 기호 작용(semiosis)이라 한다. 기호학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 기호 작용에 관한 학문이다. 소쉬르에 따르면, 기호는 기표(記表:signifiant)와 기의(記意:signifie) 그리고 기호 자체로 구성된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의이고, 꽃집에서 산 장미꽃은 나의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 곧 기표가 된다. 곧 기의가 기표와 결합하여 사랑을 표현하는 기호를 만들어낸 것이다. 장미꽃을 받아 든 사람은 그것을 선물한 사람의 의도를 해석한다. 이때 발생하는 현상을 의미 작용이라고 한다. 기표로써 기의를 표현하는 쪽뿐만 아니라 기표를 대할 때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쪽에서도 의미 작용이 일어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호학은 인간의 문화 정신생활 전반을 모두 기호체계로 해석하고 인간은 기호의 요람에서 태어나 기호의 무덤에서 죽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호학은 언어 사용으로서의 파롤(parole)이 언어 사용의 저변에 깔린 묵시적 차이와 결합법칙으로서의 랑그(langue)의 부분집합으로 생각한다. 기호학자들은 인간이 랑그(langue)의 잠재적 언어 체계 내에 갇혀 있고 언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세계 내의 삼라만상을 기호학의 체계에 가두고자 한다.
기호란 세계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인간의 자의적 사유 내의 도구일 뿐 세계 전체를 드러낼 수가 있는 마법 지팡이는 아니다. 과학자들은 어떤 의미로는 자연법칙을 언표言表한다는 점에서 기호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시대의 지배적이었던 과학적 해석들이 무너지고 다른 패러다임이 드러나는 과학의 역사가 인간이 파악한 기호체계의 불완전함을 증명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이 ‘말할 수 있는 것(기호체계의 명제로 세울 수 있는 것)’에 한해 철학의 한계를 정하고자 했던 겸손한 시도가 오히려 의미가 있다.
「기호의 고고학」은 인간의 사고가 언어와 함께 태어나고 언어와 함께 묻히는 기호 문명의 역사를 상상하며 썼다. 문자가 발명된 이래 수천의 언어가 인류문명과 함께 있었지만 모두 사어死語로 묻히고 살아남은 언어는 5%정도라 한다. 지금 현실 언어도 만년은 고사하고 이천년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한국어 뿌리는 삼국시대 신라 언어라는데 고구려와 백제 언어는 사멸한 것으로 보이니. 한글은 없었으나 한자음 표기 이두(吏頭)문자가 있었는데 향가와 백제가요 몇 개 외에는 왜 기록물들이 없을까. 고구려본기와 백제본기는 이름만 달랑 보일 뿐 몇 백년을 지속한 왕조의 문 화기록물들은 어디 있을까? 「로제타석」의 비문(碑文)과 마야 문자의 해석이 묻혔더라면 이집트와 마야역사는 지금도 지하에 있었으리라. 인간은 기호라는 양피지 거울에 세계를 비추어 내고 또 기록의 영상을 남긴다. 문자에 비친 과거의 풍경과 꿈, 과거인 들의 생각과 감정은 기호 속에서 드라큐라 백작처럼 환생한다. 상상의 피가 기호의 육체로 흘러들었을 때.
「매트릭스(matrix)」를 노래함
프로그램의 창세기가 열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가‘기호는 생각한다 고로 기호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바뀐 신세계
기호와 개념들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복사되는 신세계 인간시대의 기호론자들이 바이블의 선지자처럼 추앙을 받는 신세계 인류문명은 기호시대의 수면 아래로 잠기고 기호를 신으로 모신 컴퓨터와 로봇이 불사의 영생을 얻는 에덴설화가 새롭게 창조된 신세계
아들아 불구경 가자 매트릭스가 일월성신과 산천초목을 수놓은 시뮬라크르의 미궁을 불구경가자 매트릭스가 인간시대의 중생과 아라한과 보살과 부처도 분서갱유한 거미줄 화택으로 불구경가자
(매트릭스(matrix): 수학에서는 행렬(行列). 컴퓨터에서는 부품을 종횡의 그물회로로 연결하여 구성한 장치. 여기에서는 모체, 기호의 자궁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썼다.
시뮬라크르(simulacre): 플라톤이 세계를 이데아, 이데아의 복제물인 현실, 현실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구분한데서 기원. 포스트모던 철학에서는 자본기술문명이 하나의 코드로 복제품을 다량생산하면서 이미지인 시뮬라크르가 현실을 선행하는 세계관으로 해석.)
앤디와 래리 위쇼스키 형제가 감독한 영화 「매트릭스(matrix)」는 그 철학적 주제와 알레고리의 영상으로 많은 독자들이 충격을 받았다. 미래사회가 컴퓨터와 로봇으로 부양되는 시뮬레이션의 가상세계라는 모티브는 이 세계가 시간의 환상(maya)라는 힌두철학의 핵심과 맛 물려서 심오한 상상을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시 「매트릭스(matrix)」는 이런 주제를 염두에 두고 썼다. 우리 세계는 ‘기호복제’의 시뮬라크르(simulacre) 세계라는 것. 인간문화에서 이데아, 진리. 신 같은 원본 개념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것. 우리 현실은 마르크스의 노동가치, 자본시장의 교환가치를 넘어서 ‘기호가치’의 복제 속에 있다는 것. 빅 데이터 같은 기호의 매트릭스(matrix)가 진리를 재설정하고 신탁으로서의 A.I「오라클oracle」이 인류 의식과 현실을 지배하리라는 미래문명을 염두에 두고 썼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본성과 실재에 관한 상상력과 주제는 우주의 크기만큼이나 인간의 이성과 상상을 뛰어넘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신과 존재, 진선미 같은 형이상학의 개념들을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고 정리하고 철학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현실세계의 본성과 실재(實在)에 대한 물음은 플라톤 이래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해 온 문제이다. 플라톤은 현상의 종합적 통일을 넘어서 감관과 지성으로서도 파악이 불가능한 ‘이데아(Idea)'라는 상징 관념을 설정했다. 플라톤은 세계 질서의 자연현상을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사(mimesis)로 봄으로써 이데아를 정점으로 하는 건축 이미지의 세계질서를 가정했다. 이런 생각은 아우구스투스의 중세철학과 버클리의 사유, 헤겔의 ‘절대정신’과 칸트의 ‘물자체’라는 관념론까지 이어진다.
니체와 데리다로 이어지는 포스트모던 철학가들은 진리라는 것은 없다고 본다. 존재하는 것은 수없는 의미 군을 미끄러지고 떠도는 기표(signifie)만 있을 뿐. 조금 더 확장해서 유발할라리 같은 거시 역사학자들은 신과 진리같은 개념들도 신화에서 과학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역사의 일부로 본다. 그리스 철학가에서 현대 영화감독까지 어떤 스토리가 우리 세계의 실재 모습을 더 잘 그려내고 있는지는 답이 없다. 이야기들의 구조와 모델이 계속 진화하고 있으니.
시 「매트릭스(matrix)」도 그 이야기들의 하나.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인류문화의 밈(meme)과 함께 후대 시인들이나 예술가들의 착상과 모티브motif에 살아남겠지만.
「환상 제국 붉은 여왕」
어찌하다 보니 천하를 감시하다가 50에 객사한 진시황보다 오래 살았군 어찌하다 보니 62세까지 절대 권력에 있다가 김재규한테 총 맞아 죽은 박정희보다도 오래 살았군 어찌하다 보니 금강경 마지막 구절을 주문처럼 외우며 갑상선 저하와 부정맥을 견디는 늙은 아이가 되었군 어찌하다 보니 옆자리에 말이 통하는 미인은 없지만, 마차를 타고 여행하는 러시아 귀족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시간 부자가 되었군
초등 일학년 때 눈금이 있는 신체검사 판에 서서 찍은 흑백 나체사진 육체가 허약한 아이가 카메라를 보며 겁먹은 표정으로 미래를 보고 있는 사진 미국 원조의 강냉이 빵과 분유를 먹으며 배고픔을 이긴 아이가 희망을 쳐다보고 있는 사진 6.25 휴전 후 불안한 세월에서 자란 아이가 트럼프와 김정은과 문재인이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순간까지 걸어왔구나
대전시 대흥동 출신 서생이 이웃사촌인 충남도지사처럼 출세하지는 못했으나 돈 못 버는 시인이 되서 시인들끼리만 기억하는 시인이 되서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세종시를 방문한 길상호와 송진 등 젊은 시인들과 북극 한파가 내린 세종호수에서 덜덜 떨며 찍은 사진
어찌하다 보니 일요일 아침 갑천 변을 늙어가는 동창들과 산책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풀과 흐르는 물에 뜬 청둥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유맹流氓노인이 되었군 어찌하다 보니 염라대왕이 이승의 현지처 붉은 여왕의 불륜을 감시하라고 지구에 파견한 스파이가 되었군
일생동안 낭비한 환상의 죄를 바다에 묻고 싶은 저녁에 주기도문을 외우면 알라딘의 램프가 검은 연기의 지니ginie를 불러 도와줄려나 등불이 켜진 무덤의 문을 열고 시리우스 은하로 가는 그 때 죽은 존재가 오시리스의 배를 타고 가는 크루즈 여행길에 오르는 그 때 책들이 불타고 악기가 부서지는 그 때
한밤중에 부정맥이 두근거려 잠 깨니 잠깐 살아있다는 생각 캄캄한 마음에 의식이 촛불처럼 켜지니 잠깐 살아있다는 생각 잠의 죽음과 꿈의 중음中陰을 거쳐 의식의 삶으로 돌아오는 환생 연습을 했다는 생각 지금 이생도 캄캄한 시간의 진흙 연못에서 고개를 내민 연꽃 꿈이라는 생각 연꽃이 지면 에덴 천국과 극락 정토 같은 말도 어둠 속에 함몰하리라는 생각
새벽에 노을이 벌겋게 물든 커튼 무늬를 바라보며 살아있는 세상이 아직은 좋구나 하는 생각 화탕(火湯) 지옥과 검수(劍樹) 지옥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염라대왕에게 골골 팔십까지만 부탁하고 싶다는 생각
사방이 캄캄 환상의 촛불마저 꺼지니
1983년 등단했으니 2018년 현재 시력 35년이 되었다. 40대 시 포기한 10년을 제외하면 시인 인생 25년에 시집 일곱 권을 냈다. 시 공부가 좀 된 시들은 50대 시를 재개하면서 쓴 시들이다. 「비밀 방」과 「비밀 정원」,「기호의 고고학」과 「거울아 거울아」에 묶은 시들인데. 다시 들여다보면 여전히 미흡하다. 릴케가 평생에 좋은 시 10편을 쓰기 어렵다고 했다. 10편이 남는다면 릴케 같은 시인이 되고 1-2편이라도 남는다면 시인으로서 그럭저럭 체면치레는 하는 셈인데 4권 시집 약 250 편에서 어떤 시가 남을 수 있을까? 대부분 너무 무거운 이미지와 주제를 염두에 두었기에 도태될려나?. 앞으로는 음악에 좀 더 가까운 시를 써야할까?
70년대에 시를 공부한 사람들은 그 당시 현대시를 대표하던 김춘수와 김수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상하게 나는 이상이나 김소월과 청록파와 서정주 시대의 시들을 공부하지 못했다. 정지용과 백석도 90년대 해금 되고서야 보았다. 내가 국문학이 전공이 아니고 혼자 공부했기에 그냥 문학 선배들이 권하는 김춘수와 김수영을 집중적으로 보았다. 모더니즘 표현을 배운 것도 이분들의 시를 통해서다. 1953년 동갑으로 같은 시대에 시를 썼던 이은봉 교수가 내 시를 김수영 좌파라 한 적이 있다. 김수영 우파는 김수영식 리얼리즘을 김수영 좌파는 김수영식 모더니즘을 영향을 받았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80년대 먼저 등단했던 이윤택이 내 시를 모더니즘적 리얼리스트라 분류했으니 같은 말이다. 중이 제 머리를 볼 수 없으니 타인의 객관적인 시야가 옳겠지. 모더니즘의 리얼리스트라. 한국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은 세계관의 불화 역사가 있어 종합이 쉽지 않은데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이 길을 가고 있다.
김춘수로부터 영향을 받은 시인들이 80년대 당시 「시운동』 동인들이었고 내가 속했던 「시힘」 동인들은 주로 김수영 계열의 시들을 썼다. 시힘 에서도 대부분 김수영 우파계열이고 나만 김수영의 모더니즘에 천착했던 것 같다. 83년 등단했을 때 80년대는 민중시 폭픙이 문학판에 불 때라 내 시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그렇다고 김춘수 계열의 언어 이미지가 승한 모더니즘 시도 아니었으니 언어파 시인들도 내 시를 의심스럽게 보았으리라.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시를 단념하고 40대에 아내 전공을 살려 은행돈 빌려 대전에서 2번째로 큰 컴퓨터 학원을 시작했다. 때가 어긋난 사업은 IMF로 휴지가 되어서 남은 인생의 진로가 막막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의문에 명리(命理)학을 좀 들여다봤더니 나는 재관(財官)이 무거운 신약(身弱)사주라 수양으로서의 공부를 해야 그나마 약한 체력이 천명이나마 보존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실 부귀를 체념한 인생이 2003년 오십부터 다시 돈 되지 않는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문학지형이 변해 있었디. 80년대 서울 몇 잡지에 불과하던 문학 판이 지방에까지 무수한 잡지들이 군웅할거한 시단의 춘추전국시대로 변해있었다. 그 때까지 편집자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때 늦은 청탁 폭풍을 받아 일 년에 20-30편씩 발표하는 본격 시 쓰기가 시작되고 웹진 《시인광장》과 계간 《문학마당》, 《시와표현》편집에도 관여해서 정기구독 잡지와 기증 시집들을 읽다보니 대충 일 년에 만 편의 신작시들을 강제로 읽었다. 시시 보는 눈도 이때 좀 생겼다고나 할까?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소년은 늙기 쉽고 공부는 이루기 어렵다. 일촌의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연못가에 핀 꽃들이 봄 꿈에서 깨기도 전에 계단 앞 오동나무는 이미 가을을 알리나니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 주자의 「권학문」을 배우던 고교시절에는 가을이 먼 인생이었으므로 이 시의 의미가 실감이 없었다. 이미 가을을 지나 겨울 초입에 들어선 현재는 이 시의 무게가 천금으로 다가온다. 별 스승도 없이 혼자 공부하긴 했으나 내 스스로 학인(學人)이라 생각한 지난 세월이었으니.
모범으로 삼았던 시인들의 시가 더 이상 모범이 아니었을 때, 과거에 잘 썼다고 생각한 내 시들이 수준이 안된 시였음을 알았을 때, 시 공부는 진척이 된 증거일까? 2-30대에는 동년배 시인들의 화려한 시들에 컴플렉스를 느끼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이 없다. 독자가 많던 적던 내 스타일의 시가 확립되고 나서다. 경탄할 수 있는 시가 사라진다는 것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진부한 낭만시라고 생각했던 괴테와 쉐익스피어가 다시 보이고 워즈워드와 블레이크의 차이도 보이고 엘리어트와 에즈라 파운드와 윌러스 스티븐스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공부가 진척 된 것일까? 이하(李賀)와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들이 중국 몽롱시나 우리나라 미래파들의 언어감각에 닿아 있는 것도 보이니 시를 제법 많이 읽어 본 것일까? 아직 경이롭게 읽을 수 있는 보르헤스의 시편들도 있으니 더 공부할 수 있는 희망이 남아있는 것일까?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시의 비밀은 다 드러나지 않을 터인데.
물리학자들이 밝힌 우리 풍선 우주는 138억년의 나이에 460억 광년 크기라 한다. 빅뱅의 으로부터 가속해서 사방으로 부풀고 있기 때문이라나. 물리학자들은 반사망원경과 전자현미경으로 감각을 무장한 현대과학으로도 드러난 우주지식이 1/10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 크기가 1/10000일 수도 있지. 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우리 우주 자체가 포에지(poesie)이니. 유한 목숨의 시인은 순간적인 감정의 비약과 언어 도약의 시야로 포에지(poesie)의 그림자를 잠깐 이해 할 뿐이니,
석가가 임종 직전에 제자들에게 한 최후설법도 ‘비구들아, 세계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불타는 무명(無明) 속에 있다. 공부할 시간이 길지 않으니 자신에 의지하고 법(法)에 의지해서 쉬지 말고 정진하라’ 였다 주자朱子 같은 대재(大才)와 석가 같은 대천재(大天才)도 불철주야의 정진을 말했는데 생계를 핑계로 공부를 게을리 한 범부 학인과 증생 시인은 부족한 근기와 재능의 지난 세월을 탄식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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